과도한 부
저 자 마르틴 쉬르츠
발행일 2021-08-05
판 형 변신A5
ISBN 9788955866841
페이지수 320
정 가 22,000원




21세기의 극적인 자산불평등은 최근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자산집중은 점차 거대해지는 추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 1달러로 생계를 유지하는 동안 극소수의 과도한 부자들이 수백억 달러의 자산을 소유하고 있는 상황은 감정적 동요를 불러일으킨다. 정치가 부자들의 자산집중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부자들에게 유리한 감정정치를 펼친 결과 사람들은 과도한 부자들의 특혜를 수용하는 경향을 갖게 된다. 질투와 증오는 가난한 사람들의 몫이 되고 아량과 동정은 부자들의 미덕이 된다. 그러나 부유한 자들의 박애주의는 과도한 부의 사회적 문제를 보이지 않게끔 만든다. 정의로운 사회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자산집중 현상이 어떻게 인식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과도한 부는 정의원칙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도한 부에 대항하여 일보 전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가난한 사람들의 자산자료는 여러 곳에서 얻을 수 있는 반면, 과도한 부자들의 자산자료는 아주 기초적인 정보조차 숨겨져 있는 상황이다. 저자 마르틴 쉬르츠는 편중된 부에 대한 올바른 논의가 사회적으로 일어나기 위한 선결조건으로서 명확한 자산자료의 확보를 제시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논의를 활성화시키고자 한다. 한편 이 책은 부유함이라는 딱딱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여러 시대를 아우르는 철학자, 문학가들을 소환하여 부유함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충분히 즐거운 경험이 될 수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옮긴이의 말 ‧ 4
머리말 ‧ 11

제1장 무엇이 ‘과도’한가? ‧ 31
1. 부의 측정 ‧ 37
2. 미국의 부와 유럽의 부 ‧ 50
3. 과도한 부의 측정 ‧ 56
4. 과도한 부의 은폐 vs 가시적 사치 ‧ 64

제2장 무엇이 과도한 부에서 옳지 않은가? ‧ 73
1. 부당함의 느낌이 갖는 의미 ‧ 94
2. 과도한 부의 왕조: 가문의 가치 ‧ 100

제3장 정치적 도전으로서 과도한 부 ‧ 117
1. 부유세: 과도한 부에 대한 상징적 투쟁 ‧ 122
2. 능력과 무관한 과도한 부에 대한 세금 ‧ 129
3. 과도한 부에 대한 관심의 전환으로서 교육 ‧ 138
4. 중간계층과의 공감 ‧ 142
5. 견실한 은행가의 영광 ‧ 152
6. 소유자 사회 ‧ 157
7. 경멸의 정치 ‧ 163

제4장 근거 있는, 혹은 마땅한 부 ‧ 169
1. 능력을 통한 부의 정당화 ‧ 174
2. 자선을 통한 부의 정당화 ‧ 179
3. 마땅한 부 vs 부당한 부 ‧ 185
4. 과도하게 부유한 희생자 ‧ 193
5. 과도한 부자들의 위선 ‧ 196

제5장 과도한 부에 대한 반감 ‧ 201
1. 내적 부 ‧ 210
2. 탐욕과 인색함 ‧ 214
3. 과도한 부의 뻔뻔함 ‧ 221
4. 가난한 사람의 수치심 vs 과도한 부자의 수치심 ‧ 225
5. 허영, 교만, 혹은 자부심 ‧ 233
6. 분노의 부재 ‧ 241
7. 과도한 부자의 동정심인가, 과도한 부자에 대한 동정심인가? ‧ 250
8. 질투의 부재 ‧ 256
9. 질투라는 비난 ‧ 260
10. 과도한 부자의 사악한 미덕 ‧ 268

맺음말 ‧ 279
주 ‧ 287
참고문헌 ‧ 307
_지은이

마르틴 쉬르츠(Martin Schürz)

오스트리아 빈에서 활동하고 있는 경제학자이며 개인심리분석가이다. 20여 년이 넘게 유럽의 자산분배에 대해 연구하고 있으며, 빈 경제대학교 강사로 재직 중이다. 2015년 유럽의회가 시상하는 진보 경제학상을 수상하였다.



_옮긴이

권오용

2017년 독일 하노버 라이프니츠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현재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Ethnonationalismus in Korea als alltagsreligiöse Kompensation der misslungenen Emanzipation(좌절된 해방의 일상 종교적 보상으로서 한국의 종족민족주의)』이 있으며, 사회이론과 역사사회학을 통한 사회의 정신적 구성물 탐색에 관심이 많다.
과도한 부는 어떻게 세계를 망치는가?
‘얼마나 버는가’보다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가 더 중요한 시대,
민주주의와 정의원칙을 위협하는 자산불평등에 대한 놀라운 통찰!

- 2015년 유럽의회 진보 경제학상 수상 저자
- 자산집중을 다루는 경제학과 심리학의 새로운 시각
- 현재 한국에서 가장 첨예한 주제에 대한 설득력 있는 연구

이 시대의 가장 큰 위험, 자산불평등을 파헤치다
관대한 부자들의 선의는 왜 위험한가?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출생과 자산, 이 두 가지는 한 사람을 다른 사람들 위로 가장 높이 끌어올리는 정황들이다.” 이 말은 여전히 유효한데, 오늘날 개인의 삶에 가장 큰 차이를 불러일으키는 요인 역시 ‘자산’이기 때문이다. 20여 년이 넘게 유럽의 자산분배에 대해 연구해 온 저자 마르틴 쉬르츠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유럽에서의 자산집중은 지속적으로 강화되었으며 그 어떤 초인플레이션이나 전쟁도 사적 자산을 위협하거나 녹여 버리지 못했다. 노동으로 벌어들인 자산보다 상속자산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으며 이러한 경향은 앞으로도 수십 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자산집중은 왜 문제가 되는가? 상속자산은 능력과 상관없이, 노력 없이 획득된 자산이라는 점에서 능력주의 사회와 모순되며 공정한 기회의 원리에 위배된다. 또 과도한 부자들은 자신의 부를 유지하기 위해 그 부를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사용한다. 그래서 과도한 부의 명확한 불의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불평등한 자산집중에 대한 정치적 조치들은 몹시 소극적이다. 자산이나 유산에 부과되는 세금은 자산가들에 대한 세금 우대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에 그친다. 여기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포퓰리즘이나 질투라는 비난에 직면하게 된다. 부자친화적 정치는 그 뿌리가 매우 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부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정은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늘어났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경제학자이자 심리분석가로서 부와 관련된 감정에 대한 논의로 우리를 이끈다. 그간 부 논쟁에서는 정의 문제, 도덕적 판단 등이 주가 되어 왔다. 그러나 저자는 이것만으로는 과도한 부의 문제를 돌파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부와 관련된 감정은 어떤 모습일까?

한 가지 예로, 우리는 과도한 부자들이 스스로 부유하다고 언급하기를 꺼리는 모습을 본다. 즉 과도한 부자들이라고 해서 사회적 수치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이 감정을 회피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가지고 있다. 특히 자비와 관대함을 보이는 것은 수치심을 피하고 과도한 부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 이 점에서 부자들의 박애주의는 자신의 부를 정당화하려는 ‘사악한 미덕’이 된다. 저자는 이 밖에도 감정과 관련된 다양한 사례를 들어 과도한 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과도한 부에 대항하여 일보 전진하는 법

세계에서 가장 부자인 3명의 사람이 미국 국민 하위 50퍼센트의 자산을 모두 합친 것과 맞먹는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실로 놀랍다. 그러나 이와 같은 대략적인 접근만으로는 자산불평등에 대한 생산적인 토론이나 의미 있는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저자는 편중된 부에 대한 올바른 논의가 사회적으로 일어나기 위한 선결조건으로서 명확한 자산자료의 확보를 제시한다. 이것은 빈곤에 대한 연구가 투명한 자료를 바탕으로 산출되고 있는 반면 부에 대한 연구는 그렇지 못한 것을 볼 때 그 필요성이 더욱 두드러진다. 부자들의 자산자료가 은폐되어 있으며 거기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부자들의 ‘비밀유지’ 요청에 따라야 하는 상황에서 과도한 부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몹시 어렵다.

특히 과도한 부의 기준선을 설정하려는 시도는 그동안 매우 드물었다. 저자의 말대로, 어떤 한계치가 제시되면 그 수치가 자의적이라는 비난이 잇따르게 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 1달러로 생계를 유지하는 동안 극소수의 과도한 부자들이 수백억 달러의 자산을 소유하고 있는 상황을 생각해 본다면 이러한 시도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이 책은 자산불평등이 초래하는 여러 사회경제적 문제들이 점차 격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과도한 부에 대항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제시한다. 우리는 규제 약화, 민영화, 세금 혜택 등 부자친화적 정책을 비판하고 조세피난처의 자산상황 등을 더 이상 은폐할 수 없도록 자료 개선을 요구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소수의 과도한 부를 제한하고 자산격차를 해소하여 분열된 사회를 치유해야만 한다. 결국 이것이 민주주의와 정의원칙을 지키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소수의 손에 집중된 너무 과도한 부는 이미 오래전에 사회를 갈갈이 찢어 놓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칭 관대한 초부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정은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그러므로 과도한 부자들에 대한 이미지와 우화에 맞서, 가난한 사람들, 노숙자, 난민들에 대한 현실성 있는 이야기가 제시되어야 한다.” - 본문 중에서
부자와 가난한 사람 사이에 굳어진 사회질서를 바꾸고자 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다음과 같은 점들을 이해해야 한다. 즉 자산집중이 어떻게 인식되는지, 과도한 부자에 대해 어떠한 감정들이 부여되는지, 이 작은 집단에 어떠한 미덕과 죄악이 귀속되는지를 이해해야만 한다. 부에 대한 고찰은 부자의 탐욕을 지탄하거나 그들의 관대함을 찬미하거나 가난한 자들의 시기, 질투를 비난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이는 몹시 피상적인 방식이다. (23쪽)

가난한 사람들에게 물리적 생존이 현실적인 기준선을 의미한다면, 절대적인 부는 심지어 숫자로 표현될 수조차 없다. 오히려 이는 약속과 성취의 양식일 것이다. 부는 무한으로 나아간다. 개인 자산에는 항상 몇 푼의 돈이 더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오직 과도한 부에 대한 규범적 이해만이 기준선을 정할 때 이유를 댈 수 있다. 개인 자산의 최대 한계선에 대한 고찰은 지금까지 거의 없었다. (45쪽)

가난한 사람들이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사적 자원을 복지국가의 관료제 앞에 낱낱이 드러내야 한다. 이와 달리 과도한 부자들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의 비밀보장 혜택을 받는다. 그들의 자산관계에 대한 자료는 구하기 어렵다. … 가구 설문조사로 수집된 자료의 질은 과도한 부에 대한 탄탄한 학문적 분석을 하기에는 충분치 않을 정도로 낮다. (71쪽)

상속권은 상속자가 무상속자에 비해 근본적으로 더 좋은 인생의 출발조건을 가지게 한다. 상속재산은 최고 수준으로 불평등하게 분배된다. 주로 과도한 부자의 자녀나 손자녀들만이 상속의 혜택을 받기 때문이다. 상속행위에 대한 모든 자료는 이른바 마태효과(Matthew effect)가 지배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100쪽)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교육 관련 정책은 시장친화적 전제에 맞춘 내용들로 채워지게 된다. 교육을 통해 획득한 능력은 시장에서 판매될 수 있어야 한다. 시장친화적 형태의 교육 개념에 따라 모든 기술과 자격증은 경제적 수요가 있는 것이어야 하며, 불평등 사회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해방친화적 능력과는 관련이 없다. 교육은 과도한 부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과도한 부로부터 시선을 돌리게 만든다. (141쪽)

정치가 평등 목표를 포기하고 과도한 부자들을 지원하는 데 집중하게 되면, 이른바 낙수효과 이론이 가장 중요한 이데올로기로 등장한다. … 이러한 주장에 따르면, 부자들이 더욱 부자가 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를 통해 가난한 사람들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오늘날 증가하는 이윤은 미래의 투자와 일자리이며, 그러므로 이 과정에 재를 뿌리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이 이데올로기 쪼가리는 경험적으로 유효하지 않다. (164쪽)

자신의 부를 박애주의적으로 정당화하려는 일부 과도한 부자들의 집단은, 과도한 부 자체를 자산 없는 사람들의 요구에 대항하여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 냉정하게 말해서, 그들은 자신의 부를 선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부를 자신의 안전과 도덕적 평안을 얻기 위해 투자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세제혜택을 챙기는 것은 덤이다. (182쪽)

불평등한 사회에서 불평등은 특히 가난한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더 가중시킨다. 이 사람들에게는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한 노력이 강요되면서 삶의 모든 측면을 힘들게 만든다. 이는 인간의 존엄성에도 모순된다. 존엄은 지위와는 달리 위계질서에 종속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분노는 기회가 완전히 불평등하게 분배되어 기회의 평등이 사람들의 불평 속에서만 존재하는, 그런 사회에 사는 사람들이 보이는 합당한 반응이 될 것이다. (246쪽)

과도한 부자들의 관대함은 진정한 공감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박애주의가 자신의 과도한 부를 정당화하는 데 기여한다면, 공감과는 별 관계가 없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일들이다. 즉 복지국가를 강화하고, 자산에 높은 세금 부담을 지우며, 사유재산이 형성되는 데에는 개인의 능력만이 아니라 여러 사회적인 전제조건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박애주의는 절대로 복지국가의 대안이 되어서는 안 된다. (275쪽)

문제는 단순하다. 정치적 평등의 관념을 방어하고 극단적인 부가 불러올 파멸적 결과를 비판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함께, 복지국가에 필요한 자금도 얻을 수 있다. 작동하는 민주주의의 전제는, 자산불평등이 모든 이들의 정치적 참여를 허용하는 수준에 머무르는 것이다. 가난한 시민들이 여론을 형성하고 결단을 내리는 정치적 과정에서 배제되고 중간계층은 자꾸 아래로 시선을 돌리게 될 때, 과도한 부자들은 안락하게 그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킬 수 있다. (28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