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몽골에 가다
저 자 이명미
발행일 2022-04-01
판 형 변46판
ISBN 9788955867169
페이지수 196
정 가 8,500원




고려 스타일, 몽골에서 붐을 이루다
‘고려양의 유행’은 단지 고려-몽골 간 문화적 교류라는 의미를 넘어 당대 사회상과 사람들의 지향을 보여 준다. 이미 ‘성취’를 이루어 낸 개인에 대한 선망 혹은 시기와 질투, 나도 그러한 성취를 이루어 내고자 하는 욕망, 그리고 개개인이 그러한 성취를 이루어 내는 것을 가능하게 했던 고려-몽골 관계의 면면들. 이제 13~14세기 몽골의 등장으로 형성된 세계 질서 안에서 다양한 기회의 순간을 맞이했던 고려인들에 대해 살펴볼 차례이다. 물론 그 모든 것이 자발적인 동기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내가 원해서, 혹은 어쩔 수 없어서
몽골은 이전의 중국 왕조들에 비해 그 범주가 확장되기도 했거니와, 그와 정치적 관계를 맺지 않은 나라들과도 경제적인 교류를 활발히 진행했다. 대도는 다양한 문화권으로부터의 사람들과 그들과 함께 들어온 문물과 재화가 모이는 곳이었고, 그러한 사람들 가운데에는 몽골제국과의 정치적 관계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타의에 의해 흘러든 사람들도 있었으나, 개인의 성취를 위해 자발적인 의지로 몽골을 찾은 이들도 있었다. 그 가운데 고려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었음은 물론이다.

고려와 몽골, 그리고 결국 사람들
이 책은 원대 말 궁정 안팎에서 고려양이 유행했던 양상과 그 배경에 대한 이야기이며, 고려양 유행의 배경이 되었던 많은 고려 사람들의 몽골행에 얽힌 이야기이다. 동시에 이는 몽골과의 관계를 통해서 접하게 된 세계 속에서 고려 사람 들 개개인이 꿈꾸게 된 성취에 대한 욕구, 그리고 그러한 성취를 가능하게 한 그 시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 사람이 사는 세상은, 그리고 사람들의 관계는 예나 지금이나 단순하지 않다. 이 책이 13~14세기를 살아갔던 고려인들에게 몽골과의 관계가 어떤 의미를 가졌을 것인지에 대해 조금은 더 ‘복잡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들어가며

1장 고려양, 고려 스타일
1. ‘고려 스타일’, 몽골에서 유행하다
1) ‘고려 스타일’ 복식의 유행
2) 고려양과 몽골 복식
3) ‘고려 스타일’은 다양하니

2. 원 말기의 궁정, ‘고려 스타일’ 유행의 기폭제
1) 고려양과 기황후
2) 기황후, 권력의 정점에 서기까지
3) 다시, 기황후와 고려양. 그리고

2장 고려와 몽골의 관계 속에서 몽골에 간 고려인들
1. 예케 몽골 울루스의 확장과 고려, 고려인
1) 전쟁을 거치며 국적을 바꾸다
2) 왕과 왕자를 따라갔다가

2. 내가 원한 건 아니었지만
1) 몽골에 간 고려 여성들
2) 원 궁정의 고려 ‘남성’들, 환관

3장 이루고자 하는 바가 있어: 스스로 국경을 넘은 고려인들
1. 제과(制科)에 급제하기 위해서
1) 제과에 응시한 고려인들
2) 제과에 급제하기까지, 제과에 급제하고 나니

2. 신앙은 국경을 넘어
1)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2) 황제의 부름을 받고
3) 나와 우리의 사찰을 위해

3. 세계 교역의 시대, 『노걸대』와 『박통사』
1) 『노걸대』, 키타이인과 함께한 고려 상인 이야기
2) 회회아비가 운영하는 개경의 만두집, 「쌍화점」

참고문헌
지 은 이 이명미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박사 과정을 마쳤다. 지금은 경상국립대학교 역사교육과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예비 교사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질적인 요소들이 강하게 부딪히고 장기간 함께하게 될 때 나타나는 변화상에 관심이 있어, 주로 정치사를 중심으로 한 고려-몽골 관계사와 관련한 공부를 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 『13~14세기 고려·몽골 관계 연구: 정동행성승상 부마 고려국왕, 그 복합적 위상에 대한 탐구』(2016, 혜안)가 있고, 다른 연구자들과 함께 쓴 저서로 『고려 역사상의 탐색: 국가체계에서 가족과 삶의 문제까지』(2017, 집문당), 『고려에서 조선으로: 여말선초, 단절인가 계승인가』(2019, 역사비평사), 『몽골 평화시대 동서문명의 교류: 아비뇽에서 개경까지』(2021,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등이 있다.
베이징올림픽이 끝나기가 무섭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였다. 중국이 러시아에 ‘올림픽이 끝나기 전까지 기다려달라’고 했다는 소문은, 근거가 있어 보인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내세운 명분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원래 한 민족’이라거나 ‘원래 정당한 옛 영토 수복’, ‘나토의 동진 위협’ 등이었다. 급기야 이런 명분들이 침공을 정당화하는 데 모자라 보이자 ‘우크라이나는 나치’라는 주장까지 내놨다. ‘한 민족’이라는 명분에 의한 병합, ‘고토수복’, ‘생존권’ 타령이 오히려 그 ‘나치’라는 이름을 떠올리게 한다는 사실은 차치하도록 하자. ‘고토수복’이라는 명분에 대해 사람들은 ‘몽골군 캬흐타 근처 배치’와 같은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몽골인들이 수십 년간 루스인들을 지배한 ‘타타르의 멍에’가 떠오른다는 이야기이다.

칭기즈칸의 등극과 함께 성립된 예케 몽골 울루스, 즉 몽골 제국은 세계로 뻗어 나가며 많은 나라를 정복하였고, 그중에는 고려도 있었다. 그러나 다른 나라와 몽골 제국 간의 관계는 제외하고, 고려와 몽골 간의 관계를 단순히 지배-피지배의 이분법만으로 보기에는 두 국가 사이의 관계가 복잡다단하다. 고려의 왕실은 몽골 황실의 부마로서 부마국의 지위를 누렸고, 쿠릴타이에 고려 왕이 참가하기도 했으며, 발언권이 아주 약한 편도 아니었다. 수많은 고려인이 몽골로 끌려가는 비극을 겪기도 했지만, 자발적으로 몽골에 간 고려인도 있었으며, 몽골을 통해 얻은 권력으로 패악질을 벌이는 부원배도 있었지만, 고려에 도움이 되는 간언을 한 몽골 관료도 있었다. 몽골은 세계제국이었으며, 그 세계제국에서 무역하며 이득을 본 고려의 상인들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 복잡한 두 나라의 관계 속에서,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갔을까?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문제이다.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 중에는 힘겹고 슬픈 운명을 맞이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어쨌든 몽골은 고려를 침략하였고, 수많은 사람이 죽었으며, 수많은 사람이 끌려가야만 했다. 죽은 게 내가 아니더라도, 끌려간 것 또한 내가 아니더라도, 그 사람은 내 가족, 친구, 더 나아가 이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비극의 역사 속에서도 사람들은 살고자 했다. 어떤 사람은 그러한 비극적 상황을 최대한 이용하여 기회로 삼았고, 어떤 사람은 순응했으며, 어떤 사람은 최대한 저항하고자 했다. 나라 간의 관계가 으레 그러하듯이 결국 고려와 몽골의 관계는 고려인과 몽골인의 관계였다. 이 책은 그러한 고려-몽골 관계를 사람과 문화를 중심으로 써 내려간 책이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고려와 몽골, 그리고 결국,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 수 있을 것이다.

※ 우리는 흔히 역사를 일컬어 ‘거울’이라고 한다. 역사는 시간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고, 사람들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옛날에는 거울이 권력의 상징이었지만, 현재는 누구나가 다 원한다면 손거울을 들고 다닐 수 있는 시대다. 그리고 그것은 역사란 ‘거울’ 역시도 마찬가지다. 《세창역사산책》 시리즈는 사람들의 일상과 깊이 연관한 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역사란 ‘거울’로 비춰 줌으로써 사람들에게 역사란 이름의 작은 손거울을 선물하고자 한다.
원대에 유행했던 고려양은 주로 궁 안팎의 여성들을 매개로 해서 유행하게 된 여성 복식과 관련된다. 그러나 유생, 처사와 관련된 아래 도종의(陶宗儀, 1316~?)의 글이나 ‘공을 찰 때 신는 신발’에 대해 언급한 양유정(楊維禎, 1296~1370)의 글을 보건대, 물론 신발에 한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당시 고려양의 유행은 일반 남성의 복식까지 포함했던 것으로 보인다. _20쪽

고려 공녀에서 시작해서 황자를 출산하고 황후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물론 공녀 기씨가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계획하여 실현해 낸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계획을 한다고 해서 가능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것이 기씨의 주도면밀한 계획에 의한 것이든 아니든, 일단 원 궁정에 궁인으로 들어간 여성이 황제의 성은을 입어 편안한 생활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_48~49쪽

홍군상의 말에 따라 고려의 의사를 물어본 후, 세조 쿠빌라이는 고려에 선박 건조를 명하면서 홍파두아(洪波豆兒)라는 인물로 하여금 그를 감독하게 했다. 홍파두아는 홍군상의 형 홍웅삼(洪熊三)의 아들이라고 하는데, 그는 고려 궁궐이 보이자 말에서 내려 눈물을 흘리면서 “비록 금의환향이라고 하지만, 직분이 민들을 괴롭히는 것이니 정말로 부끄럽구나”라 했다고 하며, 고려의 재상들에게도 깍듯이 예우했다고 한다. _72~73쪽

충렬왕 5년(1279)에 한사기와 함께 투르칵으로서 원에 갔던 24명의 의관 자제들 및 그 후손들 역시 각자의 상황에 따라 차이는 있었겠지만 대체로 한씨 일가와 유사한 과정을 겪지 않았을까 싶다. 그 아들 가운데 케식을 계승한 아들이 있었을 것이고, 이들은 경우에 따라 고려로 들어와 관직을 받기도 했겠지만, 몽골 현지에서 관직생활을 하며 적응한 사례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_95쪽
염제신의 이력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그가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고모부의 집에서 자랐다는 사실, 그리고 그 고모부가 원의 평장 말길이라는 사실이다. 앞서 이야기했듯 그는 염승익의 손자인데, 그 아버지는 염승익의 아들 염세충(廉世忠)이며 어머니는 조인규(趙仁規, 1237~1308)의 딸이었다. 조인규는 염승익과 함께 충렬왕 대에 재상을 지낸 인물로 충선왕 비인 조비(趙妃)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_120쪽

타의에 의해서든 자의에 의해서든, 어쩌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환자가 되어 원 조정에 들어간 고려 출신 환관들은 일차적으로는 개인적으로 원하던 권력과 부귀영화를 성취했을 것이며, 기회가 닿을 경우 고려와 고려 국왕을 위해 자신들의 힘을 쓰기도 했을 것이다.
이들은 낯선 타지를 찾아온 고려인들에게 이미 완벽하게 정착한 선배이자 동향인으로서 도움을 주기도 했을 것이다. _140쪽

몽골과의 관계 속에서, 고려의 승려들은 이전 시기와 달리 구법이라는 목적 이외의 사유로 국경을 넘기도 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원 황제의 부름을 받아서 원으로 가게 된 경우이다. 여기에는 우선 사경승들이 포함된다. 원에서는 불경을 필사하는 행위, 즉 사경을 위한 승려들을 보내 줄 것을 고려에 요구했다. 특히 충렬왕 대에 이러한 요구가 집중되어, 충렬왕 대에만 3차례에 걸쳐 100명 이상의 사경승들이 원으로 들어갔다. _169쪽

고려에서 대도로 가는 고려 상인을 주인공으로 한 한어 교재가 등장할 정도로 많은 고려 상인들이 원과의 교역을 위해 장거리 이동에 나섰던 것은 이 교역이 위험부담은 있으나 상당히 높은 이윤을 보장했던 데에 기인할 것이다. 좀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구, 당시 고려 상인들의 성취 욕구는 그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몽골제국 시기의 교역 환경 속에서 실현될 수 있었다. _18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