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 도서
쇼펜하우어와 원효
저 자 박찬국
발행일 2020-03-30
판 형 신A5
ISBN 9788984119321
페이지수 320
정 가 23,000




2020년 문화체육관광부 세종도서 학술부문 선정



"물질이 풍족하면 권태로 인해, 풍족하지 않으면 결핍감으로 인해 인간은 괴로워한다. 귀족의 고통은 권태이고 가난한 자들의 고통은 결핍감이다. 일요일은 지루하고 나머지 엿새는 고통스럽다. 죽어서 천국에 가 보았자 좋아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천국은 권태가 지배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생은 충족되지 않는 욕망과 권태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시계추와 같다."
― 본문 중에서

『쇼펜하우어와 원효』는 쇼펜하우어와 원효 사이의 유사성과 차이를 나열하는 것을 넘어서 두 사상가 사이의 생산적 대화를 매개하려고 시도하는 책이다. 쇼펜하우어의 사상을 통해서 원효의 사상을 보완하려고 하는 한편, 원효의 사상을 통해서 쇼펜하우어 사상에서 보이는 내적인 모순을 해결하려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대화를 통해서 궁극적으로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심화시키려고 했다.

저자 서문

I. 들어가면서
1. 쇼펜하우어와 원효, 비교연구의 필요성
2. 그간의 연구 동향에 대한 비판적 고찰
3. 연구 내용

II. 인생의 고통과 그 극복방안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사상
1.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1) 의욕하는 존재로서의 인간
 2) 세계의 궁극적인 근거로서의 의지
 3) 표상으로서의 세계
 4) 의지로서의 세계
   (1) 남녀 간 사랑의 본질로서의 종족보존에의 의지
   (2) 물자체로서의 근원적인 의지
   (3) 의지의 표현으로서의 신체
   (4) 물자체로서의 근원적 의지와 이데아
2. 고통으로서의 세계
3. 고통으로서의 인생
 1) 가장 심하게 고통을 느끼는 동물로서의 인간
 2) 인생의 허망함
 3) 죽음의 극복
 4) 자살에 대한 부정
4. 예지적 성격과 자유의지의 부정
 1) 예지적 성격
 2) 자유의지의 부정
5. 고통으로부터의 출구
 1) 의지에 의한 예속상태에서 벗어날 가능성
 2) 철학적 관상(觀想)을 통한 의지의 부정
 3) 심미적 직관
   (1) 예술의 본질
   (2) 예술적 쾌감의 원천
   (3) 심미적 직관의 일시성
 4) 동정 105
   (1) 개별화의 원리를 파괴하는 것으로서의 동정
   (2) 양심의 가책
   (3) 윤리학
 5) 금욕주의

III. 쇼펜하우어와 불교의 비교
1. 쇼펜하우어와 불교의 유사성
2. 쇼펜하우어와 불교의 차이
 1) 쇼펜하우어와 우파니샤드의 차이
 2) 쇼펜하우어와 불교의 차이
   (1) 형이상학에서의 차이
   (2) 인식론에서의 차이
   (3) 인과관계에 대한 파악에서의 차이
   (4) 개별적 자아의 본질에 대한 파악에서의 차이
   (5) 고통의 궁극적 원인에 대한 파악에서의 차이
   (6) 시간관의 차이
   (7) 자유와 의지의 본질적 성격에 대한 파악에서의 차이
   (8) 이성에 대한 견해의 차이
   (9) 고행에 대한 입장의 차이
   (10) 예술관의 차이
   (11) 철학에 대한 입장의 차이

IV. 쇼펜하우어와 원효의 비교
1. 쇼펜하우어와 원효의 유사성
 1) 근본불각과 지말불각
 2) 삼세의 분석
   (1) 무명업상
   (2) 능견상(견상, 전상)
   (3) 현상(경계상, 현식)
 3) 육추의 분석
   (1) 지상
   (2) 상속상
   (3) 집취상
   (4) 계명자상
   (5) 기업상
   (6) 지상과 분별사식 그리고 오감각식 사이의 관계
   (7) 업계고상
 4) 미혹의 상태로서의 불각의
 5) 깨달음에 대한 원효의 사상
   (1) 정법훈습
   (2) 애번뇌(愛煩惱)의 단절과 정법훈습
   (3) 깨달음의 단계
2. 쇼펜하우어와 원효의 차이
 1) 쇼펜하우어 철학의 내적인 모순
 2) 쇼펜하우어 사상의 내적인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방향
   (1) 인간의 실존적 욕망
   (2) 쇼펜하우어 철학의 내적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사상적 방향
 3) 원효의 사상은 쇼펜하우어 철학의 내적 모순을 어떻게 극복하는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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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찬 국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교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니체와 하이데거의 철학을 비롯한 실존철학이 주요 연구 분야이며 최근에는 불교와 서양철학을 비교하는 것을 중요한 연구 과제 중의 하나로 삼고 있다.
저서로는 『원효와 하이데거의 비교연구』(청송학술상), 『니체와 불교』(원효학술상), 『내재적 목적론』(운제철학상), 『초인수업』(대만, 홍콩, 마카오 번역 출간), 『그대 자신이 되어라―해체와 창조의 철학자 니체』, 『들길의 사상가, 하이데거』, 『하이데거는 나치였는가』, 『현대철학의 거장들』, 『들뢰즈의 《니체와 철학》 읽기』,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읽기』 등이 있고, 역서로는 『헤겔 철학과 현대의 위기』, 『마르크스주의와 헤겔』, 『실존철학과 형이상학의 위기』, 『니체 I, II』, 『근본개념들』, 『아침놀』, 『비극의 탄생』, 『안티크리스트』, 『우상의 황혼』, 『선악의 저편』, 『상징형식의 철학 I, II, III』가 있으며, 논문으로 「유식불교의 삼성설과 하이데거의 실존방식 분석의 비교」(반야학술상) 등 다수가 있다.


서양의 쇼펜하우어와 동양의 원효,
두 사상가의 대화를 통해 더 깊이 이해해 보는 인간과 세계


서울대 철학과 박찬국 교수는 불교와 서양철학의 비교연구를 장기간에 걸쳐서 수행해야 할 연구 과제 중의 하나로 삼고,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꾸준히 그 둘을 비교하는 책과 논문을 발표해 왔다. 이 책 『쇼펜하우어와 원효』는 『원효와 하이데거의 비교 연구』(2010), 『니체와 불교』(2013)에 이어 세 번째로 출간되는 책이다. 저자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낯설고 척박한 이 연구 분야에 이 책이 일조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저자는 앞서 발표한 두 권의 책과 마찬가지로 『쇼펜하우어와 원효』에서도 쇼펜하우어와 원효 사이의 유사성과 차이를 나열하는 것을 넘어서 두 사상가 사이의 생산적 대화를 매개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쇼펜하우어의 사상을 통해서 원효의 사상을 보완하려고 하는 한편, 원효의 사상을 통해서 쇼펜하우어 사상에서 보이는 내적인 모순을 해결하려 시도한다. 그리고 이러한 대화를 통해서 궁극적으로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심화시키려고 했다.

이 책에서는 쇼펜하우어의 사상을 한국의 대표적인 불교사상가인 원효의 사상과 비교하고 있다. 불교의 다양한 흐름 중에서도 특히 원효의 사상과 쇼펜하우어의 사상을 비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효야말로 불교의 다양한 흐름을 회통시키려고 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는 서양철학자들 중에서 불교를 가장 긍정적으로 보았을 뿐 아니라 심지어 자신의 철학과 불교가 동일한 내용을 갖는 것으로 본 사상가다. 그는 불교가 자신의 철학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내용을 설파하고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대한 소개는 그 자체로 이미 그가 이해한 불교에 대한 소개가 된다.
실로 쇼펜하우어는 불교에 대해서 상세하게 고찰하고 있지는 않으며, 자신의 사상이 불교의 사상과 근본적으로 동일하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쇼펜하우어의 불교 이해에 대한 비판을 가한다. 그 내용은 쇼펜하우어의 불교 해석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는 쇼펜하우어의 철학과 불교가 근본적으로 상이한 철학적 입장에 서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방식으로 행해진다. 양자 사이에 일정한 동일성 내지 유사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유사성과 차이를 모두 드러냄으로써 논의의 균형을 꾀하였다.

서양철학과 불교를 비교하는 저서 자체도 드물지만, 쇼펜하우어의 형이상학과 인간관 내의 근본적 모순을 드러내면서 그러한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사상적인 기초를 불교, 특히 원효가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려고 한 연구는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저자가 희망하듯이, 해당 분야의 척박한 연구 상황을 타개할 힘을 가지고 있다.

실상은 비극적인 인생을, 우리는 인생이 이따금 던져 주는 쾌락에 속아서 가끔은 웃으면서 살아갈 뿐이다. 인간은 이렇듯 고통으로서의 인생을 짊어지고 있다. 서로 다른 시공간에 살았던 두 사상가의 대화를 통해 고통으로 가득 찬 우리 인간과 세상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해 보자.


이성 때문에 인간은 동물보다도 많은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되었지만, 동물에 비해서 훨씬 더 고통에 민감하게 되었다. 따라서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 거들먹거린다 한들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가장 예민하게 발달해 있는 동물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처지를 개선해 왔지만, 인간의 욕망에는 한이 없기에 불만은 끝이 없다. 욕망은 항상 새로운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욕망은 아무리 충족되어도 항상 허기를 느낀다. 인간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욕망의 굴레 아래 있는 것이다. _64쪽

대다수의 사람에게 생은 결국은 필패(必敗)의 것이다. 사람들은 죽고 싶어 하지 않지만,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삶은 암초와 파도가 거센 바다와 같다. 인간은 어렵게 이 암초와 파도를 헤쳐 나가면서 생명을 유지하지만 결국은 난파하여 죽음에 이른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온갖 장애와 투쟁하지만 이 투쟁을 견디게 하는 것은 대개 삶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공포다. _66쪽

쇼펜하우어는 삶을 희비극이라고 규정한다. 사람들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자신이 흡사 세계의 중심인 것처럼, 자신들이 겪는 소소한 불행에 대해서도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슬퍼하고, 소소한 행운에 대해서도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뻐 날뛴다. 그러나 인간 개개인의 삶이란 전체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물거품과 같은 것이다. 이 점에서 인간의 삶은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것에 난리법석을 떠는 희극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죽음에 임해서야 자신의 삶이 헛된 물거품과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한다. 결국 삶은 비극에 불과한 것이지만, 인간은 그것이 비극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물거품 같은 것들에 집착하면서 온갖 야단법석을 떠는 희극적인 존재이며 이 점에서 인생은 희비극이다. _66~67쪽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는 현상계에서 모든 것이 서로 투쟁하고 갈등한다는 사실에 근거할 뿐 아니라 모든 것의 허망함에 근거한다. _69쪽

이렇게 인도 철학과 불교를 그리스도교보다 더 심원한 것으로 보면서, 쇼펜하우어는 동양에서 그리스도교가 인도 철학과 불교를 대신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도교가 불교를 대신한다는 것은 마치 절벽을 향해 총을 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오히려 인도 철학과 불교가 유럽으로 흘러 들어와 유럽인들의 지식과 사상에 심각한 변화를 일으키고 유럽을 지도하는 사상이 될 것이라고 쇼펜하우어는 말한다. _118쪽

언제까지나 내 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도 언젠가는 나에게 무관심해지거나 나를 적대시할 수 있으며,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의지했던 재산이나 명예나 지위 같은 것들도 시간 속에서 사라질 허망한 것들에 불과하다.
따라서 인간이 고독감과 무력감 그리고 허무감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시간을 넘어서 영원한 존재 차원 속으로 진입하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가 종교와 함께 시작하고,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종교와 영원에 대한 관심이 사라질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_186쪽

쇼펜하우어 역시 어느 순간 일상적 삶의 덧없음과 고통을 깨닫게 되었는데, 그러한 깨달음은 단순한 지적 인식이 아니었다. 그러한 깨달음은 쇼펜하우어가 그것으로 인해 자신의 온 일생을 그러한 고통의 원인이 어디에 있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데 바치겠다고 결심할 정도로 그의 온몸과 마음을 뒤흔드는 깨달음이었다. 그러한 깨달음이야말로 부처가 왕자의 화려한 삶을 버리고 출가의 길을 걷게 만든 깨달음이었다. _252~253쪽

원효에서 남을 돕는다는 것은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실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단순히 이타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에게도 이로운 것이 된다. 원효뿐 아니라 불교에서 자비심을 낸다는 것은 자기희생이 아니라 자기실현이다. _29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