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 도서
[세창프레너미 010]
가다머 vs 하버마스
저 자 최고원
발행일 2021-05-13
판 형 변신A5
ISBN 9791166840234
페이지수 240
정 가 15,000




가다머는 인간의 ‘이해’가 선입견의 영향 아래 발생한다고 여겼다. 반대로 하버마스는 뒤에 가려진 문제를 밝혀내고 바로잡는 ‘비판적 반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따라서 선입견이 이해의 뒤에 숨어 있다면, 비판적으로 반성하고 바로잡아야 한다고 여겼다.
이해와 진리, 비판과 반성으로 맞부딪친 가다머와 하버마스. 두 사상가의 치열한 논쟁 속에서 우리는 ‘한계를 인정하려는 겸손’과 ‘한계를 넘어서려는 용기’ 모두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서로 대립하면서도 상대에게 영향을 주며 자신을 성장시켜 온 대가들을 비교・대조하여 그들의 삶과 사상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프레너미(Friend Enemy) 시리즈. 의사소통과 이해의 영역에서 두 사상가가 남긴 논쟁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자.
들어가는 말

제1장 학문적 판단도 완벽할 수 없다: 하이데거
1. 학문의 의미와 객관성의 문제
2. 객관적 판단의 일반적인 한계
3. 인식이론과 사람의 의식
4. 존재와 현존재
5. 존재와 현상

제2장 모든 이해는 선입견을 바탕으로 한다: 가다머
1. 학문적 지식과 진리의 문제
2. 현상 경험과 이해
3. 이해와 선입견
4. 지평융합과 언어적 대화
5. 언어와 해석학
6. 해석학과 비판적 사회과학

제3장 비판적 의식은 전통과 선입견을 꿰뚫는다: 하버마스
1. 서양의 역사와 비판이론의 등장
2. 의사소통적 합리성과 비판적 반성
3. 전통에 대한 두 가지 관점
4. 전통의 작용과 우리의 의식

제4장 정신분석학과 논쟁: 이론언어는 일상언어의 왜곡을 감시한다
1. 정신분석학과 무의식
2. 증세의 종류와 정신분석의 방식
3. 무의식의 두 가지 차원: 개인적 차원과 집단적 차원
4. 언어의 두 가지 차원과 선언어적 상징조직
5. 원형상징의 작용과 이론언어의 특수성

제5장 하버마스의 반박: 이해를 관찰할 수 있다
1. 가다머의 이해 개념과 이상적인 의사소통 상황
2. 의사소통 공동체와 정신분석
3. 정신분석과 전이 상황
4. 전이 상황과 ‘장면적으로 이해하기’
5. 로렌처와 ‘장면적으로 이해하기’
6. 전이 상황의 특수성과 이론적 한계
7. 전이 상황의 실천적 유용성

제6장 가다머의 재반박: 이해는 놀이터와 같다
1. 가다머와 놀이이론
2. 전이 상황과 놀이이론
3. 일상언어적 놀이에 대한 하버마스의 입장

나오는 말

참고문헌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어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철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몇 가지 고미을 안고 독일로 유학하여 마인츠대학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한 뒤에 아주대학교에 터를 잡고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며 이런저런 문제들을 고민하고 있다.
이해의 숙명 앞에서 맞부딪친 두 사상가, 가다머와 하버마스
‘한계를 인정하려는 겸손’과 ‘한계를 넘어서려는 용기’의 충돌
과연 인간에게 선입견 없는 이해가 가능할까?


가다머와 하버마스, 선입견을 두고 논쟁하다

가다머는 학문을 포함하는 우리의 모든 정신활동을 ‘이해’라는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인간의 ‘역사성’을 고려할 때, 이해는 필연적으로 앞선 판단, 즉 ‘선입견’의 영향 아래에서 발생하게 된다. 그러므로 학문적 방법으로는 결코 진리에 도달할 수 없으며, 오히려 이해의 발생과 경험, 그 자체가 바로 ‘진리 경험’인 셈이다.
하버마스는 어떤 것의 이면이나 배후의 문제를 밝혀내고 바로잡는 ‘비판적 반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선입견이 이해의 바탕인 한, 그것 역시 비판적 반성의 대상이며, 그런 과정도 없이 이해를 진리와 결부시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 지적한다.
인간의 선입견을 둘러싸고 벌어진 두 사상가의 논쟁. 우리는 선입견 때문에 사물이나 상황을 제대로 못 보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선입견 없는 이해가 가능할까?

우리의 말과 생각에 깊이 뿌리내린 전통도 선입견일까?

가다머는 전통이 ‘정당한 권위’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전통이란 그저 ‘부당한 억압’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군대나 학교, 회사에서 볼 수 있는 군기 잡기, 부조리 등이 부당한 억압에 속한다. 공동체 의식을 고양하거나 역사적 반성으로부터 형성된, 순기능을 발휘하는 전통은 정당한 권위를 갖고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가다머는 이렇게 이어진 전통이 선입견으로 작동하며, 민족, 국가, 공동체의 성격을 규정하고 서로 연대를 가능하게 한다고 보았다.
하버마스는 이러한 전통의 형성으로부터 소멸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 불순한 의도가 개입되었을 가능성이 없을지 항상 의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나의 전통이 변화할 때는 ‘이전의 전통으로부터 얻는 교훈, 역사가 주는 가르침’ 같은 것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이해의 배후에 있는 전통의 불순한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 또 다른 전통이라는 선입견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말일까?

정신분석으로까지 번진 두 사상가의 논쟁
‘전이 상황’과 ‘놀이’


두 사상가의 논쟁은 ‘정신분석’의 영역까지 번진다. 로렌처의 ‘장면적으로 이해하기’란 ‘실제 상황’, ‘전이 상황’, ‘유아기 상황’ 세 단계로 이루어진 정신분석의 한 방법이다. ‘실제 상황’은 지금 환자가 겪은 일을 이야기하는 단계이고, ‘전이 상황’은 환자가 겪은 일 때문에 화가 번진 일을 말하는 단계이며, ‘유아기 상황’은 환자가 이런 반응을 보이게 된 유아기의 기억을 찾는 단계이다. 하버마스는 여기서 ‘전이 상황’에 주목했다.
‘전이 상황’에서는 의사가 두 가지 역할을 맡게 된다. 하나는 환자와 의사소통하는 내부의 참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고, 하나는 의사가 환자와의 의사소통을 제3자의 눈으로 조망하는 관찰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버마스는 이런 ‘전이 상황’에 주목하여 우리의 의사소통에 참여와 관찰이 동시에 일어날 수 있음을 보이고, 의사소통 과정에서 선입견을 포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가다머는 반대로 의사소통은 ‘놀이’일 뿐이라며 ‘전이 상황’처럼 작위적인 대화는 의사소통이 아니라고 응수한다.
p.21 사람이 하는 판단은 그 형태와 종류 혹은 낱낱의 개별적 특성과 상관없이 모두 일정한 한계를 갖는다.

p.60 우리 의식에 드러나는 어떤 것, 그리고 그것에 작용하는 우리의 특정한 시각, 그 결과로서 우리의 이식에 ‘이해’가 발생한다.

p.103 하버마스는 반성에 비판의 기능을 부여하면서, 이를 비판적 반성이라 불렀다. […]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 보자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사회의 영향이라는 것들이 우리에게 부당한 것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혹은 그것들이 우리의 판단을 어떤 식으로든 왜곡하고 있지는 않은지 감시하는 것이다.

p.153 쉽게 말해서, 가다머는 진리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다면서 거기에다 선입견을 가져다 붙이고, 그것도 모자라서 그것을 그저 ‘숙명으로 받아들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p.173 가다머는 전통이 전통으로 자리 잡기 위하여 우리의 자발적인 인정이 반드시 필요한 것처럼, 선입견 역시 그와 ‘유사한’ 방식으로 이미 정당성을 획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해의 과정에서 선입견이 하는 역할, 그 안에 이미 우리의 자발적인 인정과 결과적으로 같은 기능을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p.202 전이 상황은 직접적인 참여와 경험, 그리고 경험 외부에서의 관찰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대단히 특이한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다머가 주장하는 보편성에 대한 반례가 될 여지가 충분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이 상황의 한계에 대한 몇 가지 지적은 여전히 하버마스의 입장을 곤란하게 만들고 있다.

p.233 가다머는 우리 인간이 아무리 노력한다 하더라도 결코 극복할 수 없는 한계를 보여 주었다. 그러나 그 한계는 우리 모두를 가두는 두껍고 갑갑한 담장이 아니라, 우리에게 진리가 드러나 보이는 밝고 맑은 창이 되었다. 하버마스에게는 그렇게 열려 있는 창도 결국은 우리가 뛰어넘어야 할 장애물의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