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 도서
절망을 그리다(무너진 자들을 위한 미술의 변명)
저 자 박종성
발행일 2023-01-10
판 형 신국판 변형(140*220)
ISBN 9791166841385
페이지수 344
정 가 24,000




바이마르 시대, 전쟁의 패배가 불러온 고통을 없애기 위해 다시금 전쟁을 준비하는 국가폭력 앞에서 사람들은 조용했다. 그들을 대신한 시대의 선봉은 ‘작가’였다. 주제는 ‘절망’이었다. 이들은 현실 경험세계에 대한 치밀한 천착으로 표현주의의 시동을 건다. 진실에 매달린 표현주의자들은 붓놀림으로 정치적 함성을 대신한다. 표현은 하염없는 ‘관찰’과 ‘생각’이 끝난 다음의 ‘일’이다.

‘미술로 보는 정치’는 정치연구에서 생소하다. 그러나 ‘보고 기억하며 회상’하는 감각적 인지야말로 정치관계의 이해에 효과적이다. 이 책은 ‘미술정치학’을 통해 정치탐구의 지평을 넓히고, 폭력의 역사 속에서 절망하는 인간들을 살핀다.
프롤로그

제1장 미술의 정치성과 미술정치: 인상주의 저물고 표현주의 뜨다
1. 표현의 정치와 권력화: 꾸밈과 드러냄은 어떻게 다른가
2. 공격과 바로 드러내기: 굶주린 야수여, 먹이를 뜯어라
주석

제2장 표현주의의 지속과 변화: 보이지 않는 것과 보지 못하는 것
1. 후기 표현주의의 분화: 진실주의·신즉물주의·마술적 사실주의
2. 바이마르의 미술정치: 국가는 덧없고 사람들은 흔들리는데
주석

제3장 절망의 미술정치: 위로와 변호
1. 매춘(賣春)과 매춘(買春)
2. 자살과 색정 살인
3. 카바레와 살롱
4. 전쟁과 패배
주석

제4장 한국의 표현주의: 미술사상의 번짐과 스밈
1. 국경의 해체와 미술의 힘: 절망은 어디서나 넘쳤다
2. 한국미술과 작가의 표현정치: 미술사는 끊어지지 않는다
주석

에필로그
참고문헌
박종성

한양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원대학교를 정년퇴직하고 명예교수는 사양했다. 정치와 관계 맺는 주변의 끈끈함으로 작업의 중심을 삼고 있다. 지은 책으로, 『한국의 매춘』(1994), 『왕조의 정치변동』(1995), 『정치와 영화』(1999), 『한국정치와 정치폭력』(2001), 『백정과 기생』(2003), 『문학과 정치』(2004), 『조선은 법가의 나라였는가』(2007), 『씨네 폴리틱스』(2008), 『패션과 권력』(2010), 『한국의 파벌정치』(2012), 『사랑하다 죽다』(2012), 『퇴폐에 대하여』(2013), 『영화가 뿌리친 정치사상』(2015), 『형벌을 그리다』(2015), 『아전과 내시』(2016), 『평전 박헌영』(2017), 『국가는 폭력이다』(2018)가 있다.
“미술은 ‘정치’다”
미술이 뜨거운 정치 주체였던 1920년대,
가장 낮은 곳에서 흔들리는 이들의 ‘절망’을 그리다

표현주의는 독일 현대사의 바이마르 시대(1919-1933)를 대표하는 핵심적 미술사조이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에 수립된 바이마르 공화국은 불안한 사회정세로 몹시 혼란했으며 시민들은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실업으로 고통받았다. 반면 예술은 새로운 시기를 맞아 융성하여, 표현주의를 표방한 이 시기의 화가들은 거친 화풍과 원색의 이미지로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모네에서 고흐, 고갱으로 이어진 인상주의는 저무는 해처럼 새로운 미술사조에 꺾이고, 키르히너를 필두로 베크만, 딕스, 그로스, 마멘 등이 주도적으로 표현주의의 계보를 이었다.

물론 표현주의라는 하나의 잣대만으로 측정할 수는 없지만, 이들의 무게중심은 표현주의를 공유한다. 불편한 진실을 직설적으로 드러낸 이들의 작품은 현실적인 진지함과 정치적 시선을 전제로 한다. 즉 “표현의 본질은 ‘정확성’에 있고 이를 위해 작가는 ‘잘 보아야’” 했다. 이 시기 작가들에게 표현주의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었다. 전환기의 혹독함, 배부른 정치인과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창녀들, 무력한 상이군인들, 자살과 색정 살인의 현장은 “도발과 저항을 일삼는 표현주의자들의 심리적 동기”가 되었다. 예술은 민중을 대신하는 정치적 의사 표현의 주체로 우뚝 섰다. “그려야 할 것들은 널려 있었다. 보려 하지 않아서였지, 보자고 작정만 하면 세상 곳곳은 오브제의 아카이브로 흐르고 넘칠 지경이었다.”

제1장에서는 미술의 정치성과 미술정치에 대해 다룬다. ‘재현’과 ‘표현’ 개념을 둘러싼 담론, 표현주의 전후의 미술사조, 인상주의의 쇠퇴와 표현주의로의 심화 과정을 살펴보고 표현주의의 대표 작가들도 언급한다. 제2장에서는 표현주의의 지속과 변화 과정을 살핀다. 후기 표현주의는 진실주의, 신즉물주의, 마술적 사실주의로 확장된다. 딕스, 마멘의 작품을 감상하고, 1920년대 바이마르의 미술정치 양상을 살핀다. 제3장에서는 독일의 매매춘 확산, 폭증하는 자살과 색정 살인, 전쟁 등 절망적 상황을 다루는 미술정치 시도를 주목한다. 로트레크, 딕스, 그로스, 마멘 등의 작품을 통해 그들이 포착한 당대의 비극적 정서를 읽는다. 마지막 제4장에서는 국내로 시선을 돌려, 강점기 조선미술의 표현주의 양상을 살핀다. 황술조의 작품에서 ‘조선적 유화’와 표현주의의 시도를 엿본다.

“많고 많은 미술사상 가운데 하필 표현주의에 꽂히는 까닭은 바로 이 ‘예술적 믿음’을 관통하는 적실성과 설득력에 있을 터다. 모든 미술이 ‘정치적’일망정, 이들만큼 목청 높여 ‘정치적’으로 저항하거나 정색하며 사회비판과 예술적 공격을 작업 본령으로 삼는 경우도 흔치 않기 때문이다. 여간해서 미술은 ‘정치’를 전면에 내세우거나 겉으로조차 ‘정치적’이고자 하지 않는 데 반해, 표현주의자들의 함성인즉 문화적 질풍과 역사적 노도와 함께 표현의 힘을 구현한 까닭이다. … 문제는 다가섬의 자세와 지탱의 의지다. 우리의 문제를 들여다볼 예리한 도구로 과거 표현주의의 성난 파도와 거친 바람을 다시 맞이할 이유는 넘친다. 무엇을 취하고 어디부터 버릴는지는 다음다음의 궁금함이다. 시대를 후벼 파고 총체적 책임의 배후로 정치를 담보, 귀책하는 미술적 절차에 인문의 불꽃을 지피는 작업도 더는 늦출 수 없는 나날이다.” (프롤로그 중에서)
‘표현주의’가 등장하기 전에도 ‘표현’의 문제가 생소했던 건 아니다. 단지 ‘표현’이라고 표현하지만 않았을 뿐이다. … 단지 어떻게 그릴 것인지의 기법 문제가 아니었다. 거침없이 솔직하며 너무나 진지하여 공격적 접근과 노출 앞에서 모두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그 일’은 가히 충격이었다. 미술적 드러냄의 원류로 1차 대전 이전부터 시작된 이 사상에 주목하게 되는 것도 그래서다. (21쪽)

‘미술이 정치’라는 사실은 그 자체로 존중해야 할 인문가치를 지닌다. 미술이 작가들만의 예술적 독점 대상으로 한정되거나 지독한 배타적 도구로 머물 수 없는 내력도 이 지점에서 섬세한 추적을 필요로 한다. 미술을 들여다보면 삶의 디테일이 보이고 작가의 나날을 뒤쫓다 보면 그들의 삶이 곧 치열한 정치 그 자체임을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47-48쪽)

딕스가 견뎌 내던 당대 독일은 보수적 전통과 변화의 새로운 물결이 부딪히고 있었다. 아울러 전체주의자들의 광기로 무너져 가는 세상을 부여잡고 한사코 과거를 애틋하게 그리워하는 기성세대가 어지럽게 공존하던 시기다. 그 속에서 딕스는 과거의 영광에 매달리는 ‘보수세력’이 일어서지 않는 ‘남성’을 부여잡고 헛된 욕망을 불태우는 ‘노인’과 다름없다고 본다. … 노인의 무릎 위에 앉아 살아 움직이는 새 시대의 가치야말로 힘없는 듯 보여도, 당당한 몸매와 부릅뜬 눈빛은 머잖아 구시대의 가치를 제압할 준비가 끝났음을 거뜬히 예고한다. (114쪽)

표현주의는 곧 숱하게 ‘보이는 것들’ 가운데 ‘보고 싶은 것들’만 선별 집중할 때 놓치고 마는 시각적 빈터에서 자라난다. 즉 ‘보아야 하는 것들’의 소중함을 알리는 미술적 계기로 작동한다. 이때 ‘보고 싶은 것들’과 ‘보아야 하는 것들’의 교집합이 장차 표현주의 구성의 중요한 미술 자원이 된다는 점을 놓쳐선 안 된다. (146-147쪽)

작가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공통의 주제는 하나같이 불공평하고 취약하며 상처받기 쉬운 인간들이 치를 사회적 고통이었다. 의도치 않은 행위의 결과로 빈곤하고 불평등하며 비인간적인 삶의 조건을 견뎌 내야만 하는 민중의 절박함이 무능하고 무책임한 국가 때문이었다는 해석은 정확했다. 나아가 문제의 급박한 해결을 눈앞에 두고도 면피의 핑계만 추구하는 지배계급의 한심함은 도리어 그들 자신의 쾌락추구와 탐욕의 축적으로 빛을 발하고 있었다. (164-165쪽)

돈으로 여인을 사고 관계 맺은 다음, 단칼로 잔혹하게 도륙한 모습을 묘사하는 일은 그냥 표현이 아니다. ‘고상하고 거룩한’ 것들을 향한 치열한 혐오이자 정교한 침 뱉음이다. 불행은 한꺼번에 예고 없이 닥친다는 사실은 여기서도 일상이다. 왜 하필 ‘1922년’이었을까. 그때가 미술적 불운의 해이자 폭력의 광기를 헤쳐야 했던 시기였는지는 과학적 소급이 어렵다. 단지 ‘우연’이라는 시간적 일치와 간전기 특유의 슬픈 조건을 집약할 뿐이다. 하지만 그로스에게 그해는 미술혁명의 적기였다. (212쪽)

전쟁은 독일 표현주의 미술이 다다른 절정의 오브제다. 최상의 이미지로서가 아니라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경고의 단서로 인간 정서에 깊이 호소하는 주문쯤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작품을 보며 받아들이는 관객들의 충격이 압도적일수록 미술의 정치력 또한 비례하는 건 사실이다. 전쟁을 그리는 작가들, 특히 표현주의를 지향하는 이들의 경우는 절대적이다. (240쪽)

미술사상으로서의 표현주의를 자생적으로 발아하지 못한 한계와 식민체제의 분쇄를 주도하지 못한 정치적 무능을 겹쳐 보면, 한국미술의 주관성을 향한 의식적 과부하는 이미 팽창의 극점을 넘어선 지 오래였을 것이다. 이 땅의 작가들은 왜 해방과 독립의 주체일 수 없었을까? 미술이라는 본업을 갖는 작가들에게 직업정치의 현실적 변화와 질서의 조절능력까지 부과하는 건 무리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290쪽)

미술로 혁명하는 것은 불행의 소재와 고통의 근원을 ‘표현하는 일’에서 출발한다. 그렇게 혁명이 시작되는 것임을 계몽하는 과업이 미술이다. … 그것은 거창한 일도, 딴마음으로 불타는 혁명가의 비즈니스도 아니다. 권력의 찬탈을 꿈꾸거나 세상을 훔칠 야욕에 불타 예술의 허울마저 빌리려는 사기 행각은 더더욱 아니다. 표현의 혁명은 미술정치의 시작이자 끝이다. (30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