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_no => 43 도서출판 세창출판사






수상 도서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동양편 774] 영애승람역주(상)
저 자 마환
발행일 2023-03-22
판 형 신국판(152*225) 양장
ISBN 9791166841743
페이지수 408
정 가 33,000




마환의『 영애승람』은 15세기 초 서남아시아와 인도양 주변의 나라와 항구들의 지리, 문화, 그리고 해상교역과 관련된 중국 문헌자료 중에서 가장 상세한 정보를 담고 있는 책으로, 중국뿐만 아니라 조선의 ‘세계’ 인식에 토대가 된 자료이다
『영애승람역주』 서문―풍승균
마경(馬敬)의 「서」
마환(馬歡)의 「영애승람서」
기행시

01_참파 왕국[占城國]
02_자바 왕국[爪哇國]
03_팔렘방 왕국[舊港國]
04_시암 왕국[暹羅國]
05_말라카 왕국[滿剌加國]
06_아루 왕국[啞魯國]
07_사무드라 왕국[蘇門答剌國]
08_리데 왕국[黎代國]
09_람브리 왕국[南浡里國]
10_실론 왕국[錫蘭國]
11_퀼론 왕국[小葛蘭國]
12_코치 왕국[柯枝國]

색인
저 자_ 마환(馬歡)
오늘날 절강성 소흥(紹興) 지역인 회계(會稽) 출신으로 자(字)는 종도(宗道)로 알려졌으며, 정화(鄭和)가 이끄는 원정(1405~1433년)에 통역관으로 3차례 수행했다고 한다.

교주자_ 풍승균(馮承鈞, 1887~1946)
호북성 한구(漢口) 출신으로 자(字)는 자형(子衡)이다. 1911년 소르본 대학에서 학사학위를 받고, 콜레주 드 프랑스(Collège de France)에서 폴 펠리오(Paul Pelliot)에게 수학했다. 이후 북경사범대학교 역사과 교수로 재직하며, 동서양 문물 교류 분야의 주요 도서를 교주했고, 특히 당시 서양학자들의 연구를 번역 소개하는 많은 성과를 남겼다.

역주자_ 박세욱(朴世旭)
돈황의 부(賦) 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현 중국 문학과 예술, 특히 동서양 문물교류를 중심으로 공부하고 있는 강사이다. 현재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연관 역주서로 『제번지역주』, 『8세기 말 중국에서 인도로 가는 두 갈래 여정』, 『진랍풍토기역주』, 『도이지략역주』 등이 있다.
저자인 마환의 출신은 회계(會稽)이고, 자는 종도이며, 정화의 원정에 3차례(3차, 4차, 7차)에 걸쳐 통역관 자격으로 수행했다고 짐작할 수 있다. 마환은 이슬람교도로, ‘곽숭례’라는 사람과 동행하여 20여 개국에 관한 해외 정보를 기록했다. 책의 제목은 󰡔영애승람󰡕이고, 한 시기에 완성된 것이 아니라, 1416년부터 1433년에 걸쳐 추가되고 교정되어, 1444~1451년에 완성본이 나왔다. 그러나 마환의 원본은 전해지지 않고, 16세기 이후 총서에 수록된 판본으로만 원서의 모습을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이 책은 명나라 초기의 남아시아 여러 나라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사료(史料)가 된다.
이 역주서는 판본들 중의 가장 권위 있는 풍승균(핑청쥔, 馮承鈞)의 교주본인 《영애승람교주(瀛涯勝覽校註)》(商務印書館, 1935 간행)를 역주한 것이다.
옛날 소하(蕭何, 기원전 193년 죽음)가 관중(關中)에 들어와 오로지 서적을 수습한 일과, 방현령(房玄齡, 579~648)이 성을 차지하고는 유독 인물들을 사가(史家)들에게 기록하게 한 것은 참으로 까닭이 있다. 우리 왕조 태종문황제(太宗文皇帝, 영락제)와 선종장황제(宣宗章皇帝, 선덕제) 모두 태감 정화(鄭和)에게 걸출한 사람들을 통솔하여 해외로 넘어가 여러 나라와 교역하도록 하였다. [그 사신단에 참가한] 인물들의 위대함, 선박들의 웅장함, 재예(才藝)의 뛰어남은 이전에 없었다. 그렇지만 두 황제의 마음이 어찌 먼 곳에 많음을 과시하고 화려함을 다투고자 하는 것이었겠는가. 대저 [왕조의] 명성이 오랑캐들에게 미쳐, 온 천하의 생명이 있는 것들이 모두 덕으로 교화됨을 입고, 군주가 있어야 부모를 존중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하고자 함이다. 그러나 명을 받들어 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는 모르지만, 그 일을 마치고 그 뜻을 일컬을 만한 자로 우리 산음(山陰)의 종도(宗道) 마공(馬公)을 빼면 누가 있으리오. 공은 재간이 더욱 풍부하여 이러한 선발에 맨 먼저 부응하여 세 번씩이나 바다로 나가 여러 나라를 편력했다. 금, 비단, 보화를 조금도 사사로이 자기 것으로 하지 않고 오로지 󰡔영애승람󰡕 한 질을 만들어 돌아왔다. (34쪽)

성(占城)의 ‘점’은 참(Cham)을 음역한 것이고, ‘성’은 산스크리트어로 도시나 마을을 의미하는 푸라(pura, 補羅)를 의역한 것이다. 여기 마환의 ‘점성’은 참파의 중국식 명칭인 셈이다. 이 참파라는 명칭이 중국 문헌 자료에서 처음 언급되는 것은 7세기 중반 현장(玄奘)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이후 1177~1190년에는 이웃 왕국인 크메르 제국의 통치를 받았으며, 14세기에는 북베트남의 쩐[陳] 왕조와 30년간의 전쟁을 치렀고, 후 레 왕조(後黎)의 속령으로 전락하기도 했다(1471년). 그 후 1832년 응우옌 왕조에 정복되었다. 참파의 수도는 9~10세기에는 인드라푸라(Indrapura, 현 다낭), 이후 15세기까지는 비자야(Vijaya, 꾸이년, 1471년 정복됨)로 나타나고, 마지막 도읍은 베트남 남단의 판두랑가(Panduranga, 판랑, 1832년 멸망)에 있었다. 여기 마환의 참파 기술은 15세기 초 세계에서 가장 자세한 탐방자료를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55쪽)

나라의 동남쪽은 대해이고, 서북쪽은 오래된 해안으로 산들과 닿아 있는데, 모두 모래와 소금의 땅이다. 기후는 아침에는 덥고 저녁에는 추우며, 밭은 척박하고 곡물은 빈약하여 사람들은 밭을 갈아 파종하는 일이 적다. 큰 시내[溪]가 있는데 강물은 아래로 흘러, 왕이 사는 집 앞을 따라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왕은 시내에 나무다리를 세우고, 그 다리 위에 정자 20여 칸을 지었는데, 모든 물품의 매매가 그 위에서 이루어진다. (221쪽)

풍속은 순박하다. 집은 누각 같은 형식인데, 위에는 판자를 깔지 않고, 다만 높이가 4척쯤 되는 곳에 야자나무를 쪼개 조각으로 만들어 그 위에 드문드문 깔고, 등나무로 묶어 고정하면, 양 우리처럼 자연스럽게 층이 생긴다. 침상을 붙여 평상을 만들고, 양반다리를 하고 앉으며, 먹는 곳, 자는 곳, 부엌 모두 그 위에 있다. 사람들은 물고기 잡는 것을 생업으로 삼고, 통나무를 파내어 배를 만들어 바다로 나가 물고기를 잡는다. (223쪽)

땅에는 소목(蘇木), 후추가 나지만 많지 않고, 과일과 채소류는 모두 있다. 소와 양은 다른 곳에서 나는 것과 사뭇 다른데, 그 양은 털이 푸르고, 다리는 길며, 키는 2~3척이며, 황우(黃牛) 중에는 3백~4백 근 나가는 것이 있다. 수유(酥油)를 파는 사람이 많다. 사람들은 하루에 두 끼를 먹고, 모두 수유를 밥에 섞어 먹는다. (35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