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 도서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동양편 780] 장재집 5권
저 자 장재(張載) / 황종원
발행일 2023-03-31
판 형 신국판(152*225) 양장
ISBN 9791166841842
페이지수 292
정 가 24,000




이 책은 현존하는 가장 온전한 장재 전집인 『장재집』(중화서국, 1978)의 한글 번역서이다. 이 책에는 장재의 가장 대표적인 저작이라 불리는 『정몽』을 비롯해 『주역』 주석서인 『횡거역설』, 정치사상, 수양론, 성인론이 담긴 『경학리굴』과 『장자어록』, 많지 않은 서찰과 시문이 실린 『문집』, 그리고 장재 사후에 쓰인 각종 행장, 서문 등이 모두 번역되어 있다. 특히 그의 철학사상이 담긴 문장을 번역할 때는 번역문 외에 주석과 해설을 덧붙여 난해하기로 유명한 그의 사상을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다.
문집일존 文集佚存

1 범손지에게 답하는 서신 答范巽之書 3
2 조대관에게 보내는 서찰 與趙大觀書 7
3 여미중에게 보내는 서찰 與呂微仲書 10
4 채정의 추밀직학사 임용을 경하하는 서신 賀蔡密學啓 14
5 경주 대순성 기록 慶州大順城記 18
6 여자의 계율 女戒 23
7 책문 策問 26
8 변경의 일에 관한 논의 邊議 30
9 채 장수에게 보내는 변경 일의 계책들 與蔡帥邊事畫一 44
10 경원로(涇原路) 경략사(經略司)에게 변경 일을 논하는 문서涇原路經略司論邊事狀 51
11 경략사에게 보내는 계책들 經略司畫一 60
12 시제를 처음 정해 사당에 고하는 글 始定時薦告廟文 70
13 장천기 묘지명 張天祺墓誌銘 74
14 잡시 雜詩 77

습유 拾遺

1 성리습유 性理拾遺 93
2 근사록습유 近思錄拾遺  107

부록 附錄

1 여대림의 횡거선생 행장 呂大臨橫渠先生行狀 127
2 『송사』 「장재전」 宋史張載傳 148
3 사마광의 시호에 대해 논한 편지 司馬光論謚書 154
4 사마광, 다시 횡거를 애도하는 시 又哀橫渠詩 158
5 여남의 『장자초석』 서문 呂柟張子抄釋序 161
6 원응태의 만력 무오년본 『장자전서』 서문 袁應泰萬歷戊午本張子全書序 163
7 유삼외의 순치 연간 계사년본 『장자전서』 서문 喻三畏順治癸巳本張子全書序 174
8 이월계의 강희 임인본 『장자전서』 서문 李月桂康熙壬寅本張子全書序 178
9 장백행의 강희 47년본 『장횡거집』 서문 張伯行康熙四十七年本張橫渠集序 182
10 주식의 강희 58년본 『장자전서』 서문 朱軾康熙五十八年本張子全書序 189
11 섭세탁(葉世倬)의 가경(嘉慶) 병인본 『장자전서』 서문 葉世倬嘉慶丙寅本張子全書序 194
12 무징의 도광 임인년본 『장자전서』 서문 武澄道光壬寅本張子全書序 197
13 이신의 동치 9년본 『장자전서』 서문 李愼同治九年本張子全書序 200
14 섭적이 범육 『정몽』 서문을 계기로 개술한 강학 요지 葉適因范育序正蒙遂總述講學大指 207
15 유기의 『정몽회고』 서문 劉璣正蒙會稿序 233
16 왕부지의 『장자정몽주』 서론 王夫之張子正蒙註序論 237
17 주희의 「서명」론 朱熹西銘論 255
18 심자창의 장재 「서명」, 「동명」 제사 沈自彰張子二銘題辭 262
19 장재 도서 목록 제요 書目提要 264
저자_ 장재(張載, 1020~1077)
중국 북송 시대의 저명한 유학자로, 횡거(橫渠) 지역에서 활동하여 흔히 횡거 선생이라 불린다. 관중(關中) 지역의 학문인 관학(關學)을 창시했으며, 송명유학의 기초를 닦는 데 큰 공을 세워 북송오자(北宋五子)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대표적 저술로는 『정몽』, 『횡거역설』, 『경학리굴』, 『장자어록』 등이 있다.

역주자_ 황종원(黃棕源)
성균관대학교 유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베이징대학교에서 중국철학을 연구했다. 현재 단국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장재철학』 『주제 속 주희, 현대적 주희』(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는 『법으로 읽는 중국 고대사회』(공역), 『논어, 세 번 찢다』 등이 있다.
이 번역서의 원본인 『장재집』(張載集, 中華書局, 1978)은 명나라 만력(萬曆) 연간에 심자창(沈自彰)에 의해 간행된 『장자전서』(張子全書)의 여러 결함을 보완하고 오류를 바로잡은, 현존하는 가장 완벽한 장재 전집이다.
이 책은 『정몽』(正蒙), 『횡거역설』(橫渠易說), 『경학리굴』(經學理窟), 『장자어록』(張子語錄), 『문집일존』(文集佚存), 『습유』(拾遺), 그리고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저작은 『정몽』이다. 장재 만년에 저술된 이 책에는 위에서 소개한 장재 철학사상의 중심적인 내용이 고스란히 다 담겨 있다. 장재 사상의 정수라 할 만하다. 『횡거역설』은 비교적 이른 시기에 집필된 것으로 추정되는 『주역』 주석서이다. 비록 『주역』의 경문(經文)에 대한 해설이 간략하고 전문(傳文)에 대한 해설은 생략된 경우도 적지 않지만, 장재의 자연관, 인간관, 천인합일론 등이 모두 『주역』을 중심으로 확립되었음을 생각할 때, 이 책은 장재의 사상을 좀 더 깊이 이해하는 데 요긴하다. 특히 『정몽』과 중첩되는 내용도 다수 있어서, 그의 초기사상과 만년사상의 연결점을 파악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경학리굴』은 장재가 직접 저술한 책이 아니고 간혹 이정(二程)의 발언도 끼어 들어가 있어서 한때 그 신빙성이 의심을 받기도 했지만, 이 저작 역시 기본적으로는 장재의 생각을 담고 있다. 이 저작에서 주목을 받는 내용은 정치사상과 공부 방법론이다. 장재는 정치적, 사회적으로 정전제의 이상과 봉건제의 시행을 주장했는데, 그 내용이 이 저작 전반부에 집중적으로 나온다. 또 후반부에는 위에서 소개한 허심(虛心)과 궁리(窮理)의 병행을 제안하는 수양론, 공부 방법론이 제시되어 있다. 『장자어록』에는 성인관, 수양론 등 유학적 인간론이 주로 『논어』와 『맹자』에 대한 장재 나름의 재해석을 통해 비교적 평이한 언어로 기록되어 있다. 『문집일존』에는 장재가 제자 및 당시 교유하던 관리들에게 쓴 학문적 성격을 띤 서찰도 있고, 얼마 되지 않는 시문도 있다. 하지만 당시 강성했던 서하국(西夏國)에 맞서 변경 지역의 군사적,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장재의 여러 제언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 밖에 『습유』에는 현존하는 장재의 저술에는 보이지 않지만, 후대의 『성리대전』과 『근사록』에 수록된 장재의 발언들이 실려 있다.
끝으로 부록에는 장재 사후에 그의 생전 행적을 제자가 기록한 행장(行狀), 『송사』(宋史)의 전기를 비롯해, 역대로 간행된 장재의 저작 앞에 붙은 여러 서문이 수록되어 있고, 장재 관련 간행물의 내용을 요약한 서목(書目) 제요(提要)도 망라되어 있다.
하나. 바라옵건대 서하국 사신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하도록 하십시오. “이양조는 오만방자했으되 지금 그대의 군주는 어리니, 본국의 체제를 지탱하는 것이 불안정함을 고려하건대 분수를 넘어 윗사람을 거스르는 일이 항상 싹트곤 한다. 지금 본국에 매년 하사하던 것을 절반으로 줄이고 그대 나라의 지위가 군주에 가깝고 병권을 장악하고 있어 무력을 사용하는 신료 십수 명을 조정에서 관직과 녹봉을 받도록 하고 국사를 주재하도록 하여, 그대의 어린 군주를 편안하게 보존하게 하고 망동하지 못하도록 하라. 또한 조정을 위해 강토를 지키고 백성을 괴롭히지 않도록 본국의 군신이 이해관계를 담은 글을 갖추어 들어오도록 하라.”(50쪽)

군자는 미연에 방비하고 천지에 앞서 기미를 보네. 물상(物象)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을 때 열고, 근심하기 전에 재앙을 없애네. 주공이 사람을 세우실 때는 제한이 없으셨고 떠도는 말의 시끄러움에 개의치 않으셨네. 장차 성인이 어지럽히는 사람을 만날 것이나 하늘은 고아 같은 이 징벌함을 싫어하시네. 어찌 내가 생각하는 일을 배격하겠냐마는 오이 밭에서 신발 고쳐 신지 않고,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 고쳐 쓰지 않는 일로 어찌 족히 논하리오!(79쪽)

기축년에 나는 명을 받들어 섬서(陝西) 지역을 돌며 배우고 부풍(扶風)에 이르러 여러 학생을 인솔해 장횡거의 사당을 알현했다. 비록 수레, 옷, 의례용 기물 가운데 남아 있는 것은 별로 없었지만, 그 마루에 오르고 보니, 부지불식간에 웃음기를 거두고 숨을 죽이며 숙연히 경건해졌다.(189쪽)

“고대에 사(士)가 된 자들은 빼어나면서도 그 질박함을 벗어나지 않았으니, 아래로는 시가와 문장(詞章)을 암송하여 작위와 녹봉을 취하는 과정이 없었고, 그다음으로는 권모술수와 공리심으로 구차하게 공명을 세우는 데로 나아가는 방법이 없었다. 특히 올바른 사람은 멋대로 생각하고 속 좁게 짐작하여 천리를 허물어뜨리고 불변하는 원칙을 멸하고는 노담(老聃)이나 부처의 삿된 주장처럼 홀로 깨달았다고 자랑하고는, 총명하고 과감하고 굳센 선비들을 유혹하여 신묘한 성인의 경지를 쉽게 얻겠다는 마음이 생겨남이 없었다. 다만 인륜과 사물이 지닌 이치의 마땅히 그러함에 익숙했을 따름이니, 성명(性命)이 바를 것임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그러다가 동주(東周) 대에 이르러 사특함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래서 공자께서는 『역』을 보완하시어 형이상의 도를 밝히심으로써 인(仁)에서 그것을 드러내고 작용에서 그것을 감추었다. 한편 맹자는 생명체가 근본을 하나로 한다는 이치를 밀고 나가 측은, 수오, 사양, 시비지심이 생겨나는 까닭을 궁구했다.(24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