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 도서
해국도지(海國圖志) 【六】
저 자 위원(魏源) 저/ 정지호·이민숙·고숙
발행일 2023-05-30
판 형 신A5판
ISBN 9791166841712
페이지수 464
정 가 36,000




전근대 중국의 세계관은 고도의 문명을 자랑하는 중국(華)을 중심으로 해서 그 주변에 아직 문명이 미치지 않은 오랑캐(夷)가 존재한다고 하는 일원적인 세계관을 전제로 했다. 이러한 화이사상에 근거한 중화 세계 질서는 아편전쟁 이후 서구 열강의 침략을 받게 되면서 서서히 무너져 가기 시작한다. 서구 열강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 질서에 편입하게 됨에 따라 ‘중국’은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 많은 나라 중의 하나에 불과하며, 세계는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각 나라가 서로 경합하는 다원적인 공간이라고 하는 인식의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당시 중국의 엘리트 지식인들에게는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미증유의 세계였다. 위원은 “서양 오랑캐를 물리치려면 먼저 서양 오랑캐의 실정을 자세하게 파악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라는 인식하에 1842년 마침내 『해국도지』 50권본을 편찬하게 되었다. 그 후 1847년에는 60권본으로 증보 개정했고, 1852년에는 방대한 분량의 100권 완간본을 출간했다. 『해국도지』는 그 서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륙 중심의 중국이 처음으로 해양을 통한 세계 여러 나라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기념비적인 서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해국도지』는 당시 중국 지식인들이 ‘천하’에서 ‘세계’로 세계상을 전환하면서 중화사상이라는 자기중심적 세계상에서 탈출하는 힘들고 어려운 여행길에 나설 수 있게 해 주었다.
옮긴이의 말
일러두기
해국도지 원서
해국도지 후서

해국도지 권14
동남양
순다열도 부속 도서
구 랑카수카 순다열도 연혁
구 사파국 자와·순다열도 연혁

해국도지 권15
동남양
영국·네덜란드령 아체 및 스리비자야
구 파리국 아체 및 팔렘방 연혁고
네덜란드·포르투갈령 말루쿠
영국령 피낭섬

해국도지 권16
동남양
영국령 뉴홀랜드
부록 부속 도서

해국도지 권17
동남양
일본
부록 동남양 각 섬 형세 상

해국도지 권18
동남양
동남양 각 섬 형세 하
부록 남양 각 섬
부록 동남양 가는 경로
동양 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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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위원(魏源, 1794~1857)
청대 정치가, 계몽사상가이다. 호남성(湖南省) 소양(邵陽) 사람으로 도광 2년(1822) 향시(鄕試)에 합격했다. 1830년 임칙서 등과 함께 선남시사(宣南詩社)를 결성해서 황작자(黃爵滋), 공자진(龔自珍) 등 개혁적 성향을 지닌 인사들과 교류했다. 1840년 임칙서의 추천으로 양절총독 유겸(裕謙)의 막료로 들어가면서 서양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같은 해 임칙서에게서 『사주지』를 비롯해 서양 관련 자료를 전해 받고 『해국도지』를 편찬했다. 주요 저작으로는 『공양고미(公羊古微)』, 『춘추번로주(春秋繁露注)』, 『성무기(聖武記)』 등이 있다.

역주자 정지호(鄭址鎬)
도쿄대학 대학원 인문사회계 연구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경희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로 중국의 전통적 상업 관행인 합과(合夥) 경영 및 량치차오[梁啓超]의 국민국가론에 대해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현재는 귀주(貴州) 소수민족 사회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합과: 전통 중국 상공업의 기업 관행』, 『키워드로 읽는 중국의 역사』, 『진수의 《삼국지》 나관중의 《삼국연의》 읽기』, 『한중 역사인식의 공유』(공저)가 있으며, 역서로는 『애국주의의 형성』, 『중국근현대사 1: 청조와 근대 세계』, 『동북사강』 등이 있다.

역주자 이민숙(李玟淑)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중국고전소설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고서적 읽는 것을 좋아해서 틈틈이 중국 전통 시대의 글을 번역해 출간하고 있다. 특히 필기문헌에 실려 있는 중국 전통문화를 이해하고 재구성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는 『한자 콘서트』(공저), 『중화미각』(공저), 『중화명승』(공저), 역서로는 『태평광기』(공역), 『우초신지』(공역), 『풍속통의』(공역), 『강남은 어디인가: 청나라 황제의 강남 지식인 길들이기』(공역), 『임진기록』(공역), 『녹색모자 좀 벗겨줘』(공역), 『열미초당필기』 등이 있다.

역주자 고숙희(高淑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중문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중앙승가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동서양 고전을 즐겨 읽으면서 동서양 소통을 주제로 한 대중적 글쓰기를 시도하고 있다. 특히 18세기 한중 사회의 다양한 문화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소소한 글쓰기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법의학과 전통 시대 동아시아 재판 서사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 중이다. 저서로는 『고대 중국의 문명과 역사』와 『중국 고전 산문 읽기』가 있고, 역서로는 『송원화 본』(공역), 『중국문화 17: 문학』 , 『백가공안』 , 『용도공안』 , 『열두 누각 이야기十二樓』 , 『新 36계』 등이 있다.

역주자 정민경(鄭暋暻)
중국사회과학원에서 중국문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제주대학교 중문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중국소설과 필기를 틈틈이 읽고 있으며 중국 지리와 외국과의 문화 교류에도 관심이 많다.
저서로는 『옛이야기와 에듀테인먼트 콘텐츠』(공저), 『중화미각』(공저), 『중화명승』(공저)이 있고, 역서로는 『태평광기』(공역), 『우초신지』(공역), 『풍속통의』(공역), 『명대여성작가총서』(공역), 『강남은 어디인가: 청나라 황제의 강남 지식인 길들이기』(공역), 『사치의 제국』(공역), 『(청 모종강본) 삼국지』(공역) 등이 있다.
대륙에서 해양으로, 중심에서 여럿 중 하나로

위원이 『해국도지』를 저술하던 시기, 중국 아니 아시아와 세계는 새롭게 등장한 질서로 요동치고 있었다. 대항해 시대 이후, 세계의 진출로가 대륙에서 해양으로 변화하면서 세계의 판도가 바뀐 결과였다. 대항해 시대의 막대한 부와 산업혁명은 서방 국가에 강력한 힘을 선물하였고, 그들은 그 부와 힘을 통해 세계 질서를 재편하였다. 자신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믿어 오던 중국과, 중국이 세계의 질서라고 믿어 오던 아시아의 여러 나라의 세계는 그렇게 몰락을 맞이해야 했다. 그리고 서방 제국주의 중심의 새로운 질서가 동트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질서의 변화에 지식계는 혼란에 빠졌다. “과연 갑자기 다가온 새로운 세계에 어떻게 대응해야 한단 말인가.” 이것은 당대 지식인이라면 답해야 할 의무가 있는 질문이었다. 위원 역시 지식인으로서 답할 의무가 있었다. 그리고 그의 대답이 『해국도지』였던 셈이다. 위원은 임칙서로부터 『사주지』와 서양 관련 자료들을 전해 받고 『해국도지』를 편찬하였다. 『해국도지』는 당대 지식인들을 그때껏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로 인도해 주었다. 위원은 『해국도지』를 저술한 목적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을 저술한 이유는 무엇인가?
서양의 힘을 빌려 서양을 공격하고(以夷攻夷),
서양의 힘을 빌려 서양과 화친하며(以夷款夷),
서양의 뛰어난 기술을 배워(爲師夷長技)
서양을 제압하기 위해서 저술한 것이다(以制夷而作).”



답은 언제나 이미 준비된 것으로서 존재한다.

“상대를 알고 자신을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者, 百戰不殆).
상대는 알지 못하고 자신은 알면 한 번은 이기고 한 번은 진다(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
상대를 알지 못하고 자신도 알지 못하면 싸울 때마다 위태롭다(不知彼不知己, 每戰必殆).”


이는 동양 사회에서는 아주 익숙한 말이다. 『순자』는 동양에서 전법의 경전과도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의 중국은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기에 “상대를 알” 수 없었다. 중화사상에 갇혀 자신의 병폐를 돌아보지 않았기에 “자신을 알” 수조차 없었다. 반면 서양은 선교사와 상인들을 통해 중국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중국이 아편전쟁에서 패배했던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따라서 위원의 답은 어떻게 보면 이미 정해져 있었다. 서양을 극복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먼저 서양을 알아야 했다. 그런데, 서양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중국은 결국 서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대처법을 알기 위해서는 한 가지 질문에 더 답해야 했다. 그 질문은 도대체 왜 “필리핀과 자와는 일본과 같은 섬나라이지만, 한쪽(필리핀과 자와)은 병합되고 한쪽(일본)은 강성함을 자랑”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그래서 위원은 단순 서양에 관해서만 서술한 것이 아니라,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와 일본에 관해서도 서술하였다. 결국, 답은 언제나 이미 정해져 있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알고자 하는가였다.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그 자취를 살펴야 한다.

“즐거운 저 동산에는(樂彼之園)
박달나무 심어져 있고(爰有樹檀)
그 밑에는 닥나무 있네(其下維穀).
다른 산의 돌이라도(他山之石)
이로써 옥을 갈 수 있네(可以攻玉).”


이 시는 『시경』 「소아·학명」의 부분이다. 이 시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있겠지만, 이 시는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성어를 남겼다. 바로 “타산지석(他山之石)”이다. 이는 남의 하찮은 행동에서도 배울 점이 있다, 또는 군자도 소인에게 배울 점이 있다는 뜻으로 쓰인다. 이 구절이 도대체 『해국도지』와 무슨 상관인지 의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은, 이 타산지석이야말로, 위원이 『해국도지』를 집필한 정신 중 하나였다. 중화사상에 물들어 있던 중국에게, 중국은 군자요, 주변국은 소인과도 같았다. 그런데, 위원은 (물론 중국이 볼 때) 그 ‘소인에 불과한’ 주변국으로부터도 배울 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위원은 먼저 동남양의 국가들, 대체적으로 현재 동남아시아라고 부르는 국가들에 관해서 논하기 시작한다. 왜 위원은 하필 동남양의 국가들에 대해서 먼저 논하기 시작했을까? 앞서 말했듯이, 서양을 알고 나를 알아 서양을 이기기 위해서라면, 당연히 먼저 논해야 할 것은 서양의 국가들이 아닌가? 해국도지 4권의 「동남양서설」에서 그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서양인들이 동쪽으로 상선을 몰고 온 것은 왜인가? 연안에 이르면 연안을 빼앗고,
섬을 만나면 그 섬을 점령하여 도시와 항구를 만들고 군대를 배치하여 방비하니,
무릇 동남아시아의 중요 항구가 모두 유럽의 도시로 변해 버렸다.
… 베트남, 태국, 미얀마, 일본은 서양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바다로부터의 침입을 막은, 즉 해방 사실이 있어 이 편에 기록한다.
반면 조선과 류큐는 해방 사실과 무관하여 언급하지 않는다.”


즉, 위원은 중국에도 서양 제국주의의 마수가 손길을 뻗치고 있는 상황에서, 왜 서양인들은 동남아시아를 점령하였으며, 그것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동남양의 국가들은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통해 중국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은감불원(殷鑑不遠)”이라는 말이 있지만, 위원이 볼 때 당시 중국의 상황에는 그보다 더 가까운 거울이 있었던 것이다. 특히 『해국도지』 6권에서는 일본과 남태평양에 대해서 주로 서술하고 있다. 물론 오류도 적지 않으나, 가까운 바다의 정보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우리나라도 최근에는 대양해군의 필요성을 점점 자각하고 있다. 해상무역이 발달한 요즘 세상에서 바다의 정보는 곧 국가의 안보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위원의 이러한 탐구 자세는 앞으로의 우리에게도 본받을 만한 자세가 될 것이다.
네덜란드에게 있어 소조왜는 영국의 동인도와 같아 무릇 각 섬에 주둔하는 병사들은 모두 [네덜란드의] 명령을 따르고 제어를 받았다. 소조왜가 아라비아에 합병된 것은 명나라 천순(天順) 연간이고 네덜란드에 합병된 것은 명나라 만력(萬曆) 연간이었다. 프랑스와 영국이 쟁탈을 벌인 것은 가경 연간 초였다. 아라비아는 [소조왜를] 이슬람교로 복속시켰고, 네덜란드는 아편으로 그 나라를 좀먹었다. 모두 무형의 음모와 기만으로 사람과 집과 나라를 빼앗은 것이다. -해국도지 권14 구 사파국 자와·순다열도 연혁-

스리비자야는 송나라 이후 신하의 예절로 중국을 섬겼다. 수마트라 역시 명나라가 망할 때까지 끊이지 않고 조공 물품을 바쳤다. 우리 청조에서만 왕회(王會)의 그림에 보이지 않음을 보니 스리비자야가 이미 서양의 소굴이 된 지 오래되었음을 알겠다. … 『명사』에 이르기까지 왕기(王圻)의 오류를 답습하여 수마트라를 고대의 대식국·파사국 등의 국가로 보고 있다. 오호라! 어찌하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해국도지 권15 구 파리국 아체 및 팔렘방 연혁고-

살펴보건대, 이곳은 바로 『직방외기(職方外紀)』에서 언급한 5번째 대륙으로, 진륜형(陳倫炯)이 말한 인적이 닿지 않은 곳이다. 야만인과 짐승이 사는 곳으로, 예로부터 우매했다. 스페인이 기이한 세상을 찾았을 뿐 아니라 네덜란드·프랑스인들이 이 바닷가에 이르렀다. 영국인은 온갖 궁리를 다 해 이 땅을 경영했으니, 원대한 계획을 잘 실행했다고 할 수 있다. -해국도지 권16 영국령 뉴홀랜드-

살펴보건대, 일본의 세 섬은 홍콩의 영국 지도에 쓰시마섬 서쪽의 사쓰마섬이 나가사키 큰 섬의 서북쪽에 위치해 있다고 하는데, 이는 큰 오류이다. 영국 오랑캐들이 아직 일본에 가 보지 못했기 때문에 동양의 형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알지 못하면서 안다고 여기니 이것이 그중 하나이다. 대체로 사쓰마는 살사마(薩㟃馬)로서 일본의 남쪽에 위치한다. 명말 왜구는 이 섬의 사람이다. 그 북쪽에 나가사키가 있으며 나가사키의 동북쪽으로 왕도가 있다. 또한 북쪽으로 쓰시마섬이 있고 그 북쪽으로 조선이 있다. -해국도지 권17 일본-

류큐[琉球]는 유규(流虬)라고도 한다. 고대에는 중국과 교류가 없었는데 수나라 때 해상 선박에 의해 관측되었다가 당·송 이후 서서히 중국과 교류를 하게 되었다. 명나라 초기 조공을 바쳤는데 태조(太祖)가 복건인 중 선박을 잘 조종하는 36성(姓)의 사람을 류큐에게 하사하니 이후 공물을 바치는 데에 더욱 정성을 다했다. 후에 일본에게 멸망되어 소식이 끊어진 지 수십 년이 되었다. 얼마 뒤에 류큐 왕이 사로잡혔으나 굽히지 않자 일본은 왕을 다시 그 나라로 돌려보냈다. -해국도지 권18 동남양 각 섬 형세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