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 도서
대진경교유행중국비 ―대진경교문헌석의― (하)
저 자 오창흥吳昶興 편주/ 임영택 역
발행일 2023-09-12
판 형 신국판(152*225) 양장
ISBN 9791166842337
페이지수 328
정 가 27,000




본 역서는 경교(景敎) 연구자 및 기독교 역사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순수한 학술적 목적에서 하나의 중요한 기초 자료로 제공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가 중국 당나라 때에 이미 ‘경교’라는 이름으로 전래되어 활발한 선교활동을 펼쳤었고, 후에 원대(元代)까지 교세가 확장되었던 사실을 오늘날 새롭게 인지하면서, 이 책이 중국 전래 초기 기독교의 면모를 여러 문헌과 사적들을 통해 이해하는 귀한 통로와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1,300여 년 전 예수의 복음이 중국 대륙에 들어와 이후 한반도 신라의 땅끝까지 전해지는 과정 가운데,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는 모든 일들은 우리가 도무지 헤아릴 수 없는 그분의 섭리 속에 진행되고 있음을 깊이 깨닫게 된다.
하권 차례


제3부 경교비 주술(景敎碑 注述)
제2장 경교비문기사고정(景教碑文紀事考正)_양영지(楊榮鋕)
경교비문기사고정 권2(景教碑文紀事考正卷二) 7
경교비문기사고정 권3(景教碑文紀事考正卷三) 170
역주자 임영택(林永澤)

서울신학대학교 중국언어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중국 베이징대학교 중국언어문학과 문학박사
景敎는 당(唐)나라 때 전래된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를 말하는데, 오늘날의 시리아에서부터 시작된 경교는 그리스정교에서 분파된 기독교 교파로서 교부 네스토리우스가 서기 428~431년에 창립하여 페르시아에 교회를 세웠다. 시리아 선교사들이 들여온 경교는 당나라 황실의 비호를 받으며 흥성하여 전국에 여러 십자사(十字寺)가 세워질 정도로 교세가 확장되었으며, 당시의 사회와 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당시 비(非)한족(漢族)들이 많이 신도가 되었고, 특히 당 태종(太宗)은 경교 일파를 장안에 머물게 하고, 사원을 지어 주었으며, 경교 경전을 한문(漢文)으로 번역하도록 명을 내릴 정도로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당시 많은 경전들이 漢文으로 번역되었는데, 본서에서 다룬 주요 경전으로는 경교의 전파 역사를 여실히 증명해 주는 〈대진경교유행중국비송(大秦景教流行中國碑頌)〉(景淨)이 가장 대표적이며, 그 외 〈서청미시소경(序聽迷詩所經)〉과 〈세존포시론(世尊布施論)〉이 있고, 예배서나 찬송문에 해당하는 〈존경(尊經)〉과 〈삼위몽도찬(三威蒙度贊)〉이 있으며, 〈일신론(一神論)〉, 〈선원지본경(宣元至本經)〉, 〈지현안락경(志玄安樂經)〉, 〈대성통진귀법찬(大聖通眞歸法贊)〉 등의 경문(經文)과 송문(頌文)이 있다. 또한 본서에서는 당시 경교도의 묘지명(墓誌銘)인 〈당고좌무위병조참군상기도위령무군화부군공신도지명(唐故左武衛兵曹參軍上騎都尉靈武郡花府君公神道志銘)〉과 〈당고안씨부인묘지명(唐故安氏夫人墓志銘)〉(文簡)에 주해를 가하였고, 마지막으로 경교비(景敎碑)에 대한 주술서(注述書)인 《당경교비송정전(唐景教碑頌正詮)》(陽瑪諾), 《독경교비서후(讀景教碑書後)》(李之藻), 《경교비문기사고정(景教碑文紀事考正)》(楊榮鋕)을 실어 경교를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본 역서는 상기 문헌들에 대해 오창흥 교수가 교감(校勘)하고 주석(註釋)한 《대진경교유행중국비―대진경교문헌석의》를 번역한 내용인데, 본서의 도론(導論) 부분에 관련 내용이 상세히 소개되어 있으므로 이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기로 한다.
본 역서는 景敎 연구자 및 기독교 역사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순수한 학술적 목적에서 하나의 중요한 기초 자료로서 제공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가 중국 당나라 때에 이미 景敎라는 모습으로 전래되어 활발한 선교활동을 펼쳤고, 후에 원대(元代)까지 교세가 활발히 확장되었던 사실을 오늘날 새롭게 인지하면서, 이 책이 중국 전래 초기 기독교의 면모를 여러 문헌과 사적들을 통해 이해하는 귀한 통로와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본래 경교에서 지칭하는 십자가의 道라는 것은, 즉 예수가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죽음으로써, 만민의 죄악의 업보를 대신 짊어진 이치를 지칭하는 것일 뿐이다! 십자가란, 즉 페르시아가 고안해 낸 형벌의 도구였는데, 로마로 전해졌으나, 로마 사람들은 자국의 범인을 처벌하는 데에 사용하려 하지는 않았고, 그 형벌이 지나치게 참혹하였기 때문에, 단지 속국의 중죄인을 처벌할 때만 사용하였다. 예수의 일생 동안의 전도 행위에 대해, 유대의 위선적인 제사장들과 관리들은 원한이 골수에 사무치도록 증오하였으니, 브라만교가 부처를 미워했던 것과 桓魋(환퇴)가 공자를 미워했던 것보다 더욱 심했으며, 그리하여 완고하고 어리석은 백성들을 선동하여 소란을 일으켰고, 로마 장관 빌라도를 협박하여 이 형벌로써 예수를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과 예수가 오히려 이것을 속죄와 세상 구원의 대법으로 삼았고, 또한 이로써 유대의 국가와 가정이 무너지도록 정죄하셨음을 몰랐던 것이다. ‘三仁’이 달아나 죽은 사건으로 인하여, 商나라가 망하였고, 그 보응의 기이함이 여기에까지 이르렀으니 가히 두려울 따름이로다! _60면

‘信’이란, 일을 세우는 근본이요, 길흉의 원천이며, 성패의 중추이고; 스스로 나오는 의지요, 스스로 긍지를 느끼는 氣인 것이다. 믿음이 바르면, 뜻이 바르고; 믿음이 바르지 못하면, 뜻이 바르지 못하다. 그것이 우리들의 심신, 생명, 생사, 화복의 중대한 일에 관계되는 것은, 비교할 바가 없다. 예를 들어 顏回와 曾參이 공자를 독실하게 믿었으므로, 거의 성인의 영역에 충분히 들어갈 수 있었고; 陳相이 許行을 굳게 믿었는데, 곧 위선으로 이끌어 가기에 이르렀으니, 그러므로 사람의 일생의 결말은, 모두 여기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을 독실하게 믿으면, 마지막에 하늘에서 빛나고, 하나님 곁에 있게 될 것이며; 이단을 굳게 믿으면, 종국에 마귀와 동반자가 되어, 영원히 가혹한 형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_170면

大施主 金紫光祿大夫이며, 북방 節度副使이자, 試殿中監으로서, 자색 袈裟를 하사받은 사제 伊斯는, 사람됨이 온화하여 은혜 베풀기를 좋아하고, 경교의 道를 따라 부지런히 잘 행하였다. 멀리 王舍之城으로부터 마침내 중국에 왔고 … (王舍’는, 인도의 옛성의 이름이다. 성에는 신·구가 있는데, 옛성은 ‘萍莎王舊城’이라 하고, 새로운 성은 ‘阿闍世王’이 지은 것으로서, 화상 法顯이 일찍이 여기에 왔었다. 신·구 두 성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으며, 지금은 이미 촌락으로 변모했다! 이 성은 부처가 열반하고 1년 후, 여러 큰 제자들이 이곳에 모였으므로, 세칭 ‘거룩한 성’이라 불렸고, 동인도에 위치해 있으니, 지금의 ‘바라나’땅이다.) _33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