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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도서
(한국국학진흥원 전통생활사총서 3) 어느 경상도 양반가의 무관 진출기
저 자 정해은
발행일 2023-11-20
판 형 140*200
ISBN 9791166842627
페이지수 180
정 가 14,500




※ 전통생활사총서
한국 전통시대의 다양한 역사적 현장과 인물 속에 숨어 있는 사례들을 하나하나 발굴하여 재구성해 소개한다. 당시 사람들의 일상 속을 세밀하게 파악해서 그간 덜 알려져 있거나 알려지지 않았던 다양한 소재를 대중에게 흥미롭게 전달한다. 특히 중앙정부 중심의 자료가 아닌 민간에서 생산한 기록물을 통해 재현하는 만큼 각 지역의 살아 있는 역사적 사실을 이해하는 데 기여한다. 매년 해당 분야 전문가를 집필자로 선정하였고 지속적인 피드백을 통해 원고의 완성도를 높였다. 본 총서를 통해 생활사, 미시사, 신문화사의 붐이 다시 일어나길 기대한다.

조선의 양반은 참으로 열심히 살았다. 왜 그들은 그렇게 열심히 살았을까?
양반이 집안을 잘 유지하려면 두 가지 요건이 필요했다. 하나는 제사를 받들 후사가 끊이지 않아야 하는 것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관료를 배출하여 양반 신분을 잘 유지하는 일이었다.
조선 후기 선산의 해주 정씨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18세기에 경상도에서 생원진사시나 문과에 급제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요원했다. 당시 시대가 그랬다.
이 책의 주인공인 선산 지역의 해주 정씨 무관들도 대부분 생원진사시에서 시작해서 중간에 무(武)로 전향한 사람들이다. 문치주의 사회에서 이 전향은 집안의 명예와 사활을 걸고 용기를 낸 선택이었다.
책머리에
들어가는 말

1. 무관으로 산다는 것
무관이란 어떤 사람들일까?
글과 문관을 중시한 사회
무관의 위상
무과 알아보기
편전 이야기
일본인도 감탄한 조선인의 기마 무예 실력

2. 경상도 선산 지역 해주 정씨들의 선택
선산의 인물 신당 정붕
신당포와 고남의 해주 정씨들
과거시험이 중요한 이유
무과 급제의 의미
선산 지역의 문과 급제자들
선산 지역 해주 정씨 집안의 무과 급제 현황

3. 난관을 헤쳐 나간 정찬
집안의 우열로 나뉘는 출세길
텃세를 부리는 선전관청의 선배들
울산성 보수의 공로로 당상 품계에 오르다
마흔에 시작한 수령 생활
정찬의 부인 고령 박씨가 받은 임명장

4. 훈련원 주부로 마감한 정순
29세에 급제한 무과
훈련원 주부로 승진하다
희비를 가른 활쏘기 실력
환갑에 뛰어든 구직 활동

5. 정지신의 전성시대
아버지 덕택으로 받은 정5품 품계
21세에 무과에 급제하다
성공적인 수령 생활
사돈 권필칭의 존재
도움을 주는 이웃이 되다

6. 정달신의 수령 진출기
혼인에서 무과 급제까지
17년 동안의 구직 활동
국왕 정조의 정책으로 참군이 되다
동도 참군에서 의금부도사까지
54세에 수령이 되다
수령 이후의 삶

7. 공동의 대응
선조 현창 활동
무과 급제를 향한 공동 프로젝트
같은 해 같은 무과에 급제한 네 사람
고남의 정유검 이야기

나오는 말
주석
참고문헌
기 획 한국국학진흥원(박경환, 김형수, 나영훈, 이규호, 조인희)
한국국학진흥원은 ‘국학진흥을 통한 글로컬시대의 인류문화 창달에 기여’라는 목표 아래 전통 기록유산을 중심으로 민간 소장 국학 자료의 체계적인 수집 보존과 연구 활용 사업을 펼치고 있는 한국학전문연구기관입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전통시대 고문서와 유교 목판 등의 기록유산을 수집하고 보존하는 데에도 힘을 쏟고 있으며, 그런 기록유산들 속에 알알이 박혀 있는 한국적 스토리텔링 소재를 발굴하여 콘텐츠 제작 현장에 제공하는 일도 수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사업을 통해 자라나는 미래 세대에 선현들의 지혜를 전승하고, 한문교육원과 유교문화박물관을 운영함으로써 전통문화의 계승과 보급에도 꾸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저 자 정해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
중앙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조선 후기 무과급제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표 논저로는 『조선의 무관과 양반사회 -무과급제자 16,643명의 분석 보고서』(‘2021년 세종도서 학술 부분’ 선정), 『조선 엄마의 태교법』(‘2018년 우수출판콘텐츠’ 선정), 「정조대 《어제전운시》의 유입과 병자호란 기억의 재구성 -나덕헌·이확을 중심으로」 등이 있다.
※ 조선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살았을까? 우리에게 ‘조선’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은 보통 양반이나 선비의 모습이다. 그러나 조선에는 양반과 선비뿐만 아니라 상인이나 농민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살았다. 그러니까 조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양반들의 삶뿐만 아니라, 상인과 농민들의 삶도 함께 바라봐야만 한다. 그런데 실록이나, 『승정원일기』처럼 국가 기록에서는 이들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다행히도 개인의 일기나 서간집 등 다양한 사적 기록이 발굴됨에 따라 우리는 이들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일기나 서간집을 남긴 사람들이 주로 식자층에 속하기 때문에 일정 부분 한계는 있지만, 상인이 남긴 일기도 있는가 하면, 마을 사람들이 남긴 마을의 이야기도 있어 그동안 알기 어려웠던 주변의 삶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통생활사총서는 이처럼 조선의 변두리를 살아간 사람들의 일상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들을 따라서 읽어 나가다 보면 우리가 몰랐던 조선 사람들의 삶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조선시대는 문치주의 사회였다. 따라서 당연히 무관보다는 문관이 대접받았고, 이른바 입신양명이란 문관으로서 과거에 급제하여 중앙정계에 진출하고, 학문으로 이름을 떨치는 것을 뜻했다. 그런데 여기 문관이 아닌 무관의 길을 걸었던 어느 양반가가 있다. 이들은 대체 왜 문관이 아닌 무관의 길을 선택했을까? 물론 문관에 비하자면 급제하기가 수월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관이 되는 게 쉽기만 한 길은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예컨대 급제한다고 해서 바로 관직에 임용되는 건 아니었고, 이렇게 임용되지 못한 이들을 부르는 말은 지금도 멸칭으로 쓰이는 ‘한량’이었다. 그럼에도 해주 정씨의 양반들은 무관의 길을 걸었고 그 목표를 위해 함께 힘을 모아 무과를 준비하기도 했다. 이는 당시 기호지방 출신 일색이었던 정계에 진출하기 위한 지방 양반의 선택이었고, 어느 정도 성공적인 결과를 거뒀다. 해주 정씨 중 34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무과에 급제했고 그중 7명은 지역을 빛낸 인물로 기록되기도 했던 것이다. 이처럼 당시 풍토상 일반적이지는 않은 길을 과감히 선택하고, 이를 대대로 이어 나갔던 해주 정씨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조선시대 양반들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줄 것이다.
국가에서는 군사들을 위로하는 상으로 직부전시를 남발했다. 1729년(영조 5)에 실시된 식년 무과의 경우 급제자 316명 가운데 16명을 제외한 300명이 직부전시로 급제했다. 무려 전체 무과 급제자의 95%나 차지해서 놀라울 지경이다.
이에 비해 선산 지역의 해주 정씨 같은 양반들은 개인적으로 활쏘기 공부를 시작하여 무과에 응시했으므로 급제하기까지 상대적으로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다고 양반 신분으로 직부전시를 받기 위해 군영이나 병영에서 장교나 군졸로 근무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것이 양반 무과 응시생들의 딜레마였다.
_35쪽

하지만 해주 정씨들이 무과에 급제하던 시대에는 사정이 크게 달라져 있었다. 무과에 급제하면 무관직에 임용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무과에 급제했다고 하여 누구나 관직으로 나가는 시대가 아니었다. 장원 급제자는 바로 6품의 문관직에 임용되는 특전을 받았으나 나머지 급제자는 관직에 나갈 기약이 없었다. 한평생 미관말직조차 나가지 못한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급제자의 인원에 비해 관직 자리가 턱없이 부족해서 생긴 현상이었다.
_73-74쪽

정지신과 정주신은 무과에 급제하기 전까지 관직에 나가 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이들이 통덕랑을 소유한 것은 대가의 덕택이었다. 대가란 본인이 받을 품계를 아들·손자·아우·조카에게 대신 줄 수 있는 제도였다. 이 덕분에 양반은 관직에 나가지 않고도 품계를 소유할 수 있었고, 출세의 측면에서도 다른 사람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그래서 관료라면 기회가 생길 때마다 자손에게 품계를 주고 싶어 했다. 그렇다고 하여 무한정 줄 수 있는 것은 아니고 통덕랑까지만 줄 수 있었다.
_112쪽

정달신이 첫 근무 평정을 받은 지 한 달 반 정도 지났을 때 정조는 4명의 참군이 일하는 근무지로 조사관들을 파견해서 근태를 살폈다. 점검 결과 남도·북도·서도의 경우 나무뿌리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고 참군은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참군과 함께 순찰하는 군졸들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는 상태였다. 결국 참군 4명 중 3명이 곤장을 맞고 쫓겨났고 이들을 관장하는 군영대장들도 문책을 받았다. 오로지 정달신만 근면하게 일한 덕분에 지적 사항이 가장 적어 특별상을 받았다.
_144쪽

들어가는 말에서도 밝혔듯이 이 책은 노철과 노상추 부자의 일기에서 포착한 해주 정씨들의 이야기다. 일기에 나오는 해주 정씨들은 선산에 대대로 살던 양반이었다. 고관대작을 지내거나 영향력 있는 정치 세력은 아니었으므로 상대적으로 평범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조선 후기 선산의 여러 읍지에서 이 집안사람들의 존재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런 측면에서 선산의 해주 정씨들은 평범하면서도 비범했다고 말할 수 있다. 조선 사회에는 선산의 해주 정씨들처럼 평범하지만 비범한 양반이 훨씬 다수였다
_17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