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 도서
(한국국학진흥원 전통생활사총서 7) 19세기 조선의 종부를 만나다
저 자 김현숙
발행일 2023-11-20
판 형 140*200
ISBN 9791166842665
페이지수 160
정 가 13,500




※ 전통생활사총서
한국 전통시대의 다양한 역사적 현장과 인물 속에 숨어 있는 사례들을 하나하나 발굴하여 재구성해 소개한다. 당시 사람들의 일상 속을 세밀하게 파악해서 그간 덜 알려져 있거나 알려지지 않았던 다양한 소재를 대중에게 흥미롭게 전달한다. 특히 중앙정부 중심의 자료가 아닌 민간에서 생산한 기록물을 통해 재현하는 만큼 각 지역의 살아 있는 역사적 사실을 이해하는 데 기여한다. 매년 해당 분야 전문가를 집필자로 선정하였고 지속적인 피드백을 통해 원고의 완성도를 높였다. 본 총서를 통해 생활사, 미시사, 신문화사의 붐이 다시 일어나길 기대한다.

“조선의 종부, 일기를 통해 들여다보는 그들의 삶과 애환”
조선의 여성들은 사회·정치적 대표성과 공식 권력에서 소외되고, 유교 통치 이념을 통해 차이가 차별로 정당화되고, 사회와의 접촉이 남성에 의해 중개되면서 사회적 위상이 하락하게 되었다. 특히 경제적·신분적·성적으로 중층적인 차별과 억압 대상이었던 기층 평민 및 노비 여성의 경우 그 처지는 더욱 열악했을 것이다. 그러나 양반가 종부인 유씨 부인은 사회적으로 타자이지만, ‘사적 공간’의 실력자로서 자기 위상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즉, 18·19세기 몰락 양반들이 출현할 때 ‘치산’을 통해 가정경제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실력을 발휘함으로써 ‘사적 공간’을 인정받고, 확보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현상은 18·19세기 종부들의 적극적인 현실 타개책이 아니었나 싶다.
책머리에 4
들어가는 말 10
1. 수한리 유씨 부인의 언문일기 15
다락방 오동나무 궤짝 속의 『경술일기』 17
유씨 부인, 23세에 시집오다 20
지도에서 사라진 마을, 수한리 24
“대원군 시기까지는 잘살았다” 28
2. 안방마님의 노비 경영 31
‘사적인’ 영역과 경영의 대상인 노비들 33
북적거리는 찬방과 노비의 업무 37
작업 배분과 경영 비법 40
농사력과 일꾼들 44
안방마님과 노비의 긴장 관계 50
3. CEO 마님의 다양한 수익성 사업 55
강요된 여공과 양잠 57
목화 재배와 면포 제작 59
“곱고 이쁜 옷이 필요하신가요?” 65
솜씨 좋은 침모들 70
경영의 다각화, 상품 판매 73
상품 판매의 수익율은? 76
“돈 빌려줍니다!” 80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고율의 이자 84
4. 유씨 부인의 쇼핑 목록과 수입품 89
부인의 현금 사용처와 구매 상품 91
지역 장시와 특별한 상품들 95
상품 구매 방식은? 100
5. 봉제사 접빈객의 ‘블랙홀’ 103
끝없는 ‘봉제사’ 업무 105
제사 준비와 제사상 109
오고 가는 ‘빈객들’ 112
신분에 따른 손님 밥상 116
고급스러운 궁궐 음식의 전파 123
6. 여성의 ‘사회’와 네트워크 127
마님의 전국적인 연결망 129
다양한 네트워크 관리 방법 133
나오는 말 143
주석 149
참고문헌 157
기 획 한국국학진흥원(박경환, 김형수, 나영훈, 이규호, 조인희)
한국국학진흥원은 ‘국학진흥을 통한 글로컬시대의 인류문화 창달에 기여’라는 목표 아래 전통 기록유산을 중심으로 민간 소장 국학 자료의 체계적인 수집 보존과 연구 활용 사업을 펼치고 있는 한국학전문연구기관입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전통시대 고문서와 유교 목판 등의 기록유산을 수집하고 보존하는 데에도 힘을 쏟고 있으며, 그런 기록유산들 속에 알알이 박혀 있는 한국적 스토리텔링 소재를 발굴하여 콘텐츠 제작 현장에 제공하는 일도 수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사업을 통해 자라나는 미래 세대에 선현들의 지혜를 전승하고, 한문교육원과 유교문화박물관을 운영함으로써 전통문화의 계승과 보급에도 꾸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저 자 김현숙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전 건양대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한국 근대 서양인 고문관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표 논저로는 『근대 한국의 서양인 고문관들』, 『조선의 여성, 가계부를 쓰다』, 『사진으로 읽는 한국근현대사; 제1권』, 『일본의 한국 보호국화와 강제 병합』 등이 있다.
※ 조선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살았을까? 우리에게 ‘조선’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은 보통 양반이나 선비의 모습이다. 그러나 조선에는 양반과 선비뿐만 아니라 상인이나 농민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살았다. 그러니까 조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양반들의 삶뿐만 아니라, 상인과 농민들의 삶도 함께 바라봐야만 한다. 그런데 실록이나, 승정원일기처럼 국가 기록에서는 이들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다행히도 개인의 일기나 서간집 등 다양한 사적 기록이 발굴됨에 따라 우리는 이들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일기나 서간집을 남긴 사람들이 주로 식자층에 속하기 때문에 일정 부분 한계는 있지만, 상인이 남긴 일기도 있는가 하면, 마을 사람들이 남긴 마을의 이야기도 있어 그동안 알기 어려웠던 주변의 삶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통생활사총서는 이처럼 조선의 변두리를 살아간 사람들의 일상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들을 따라서 읽어 나가다 보면 우리가 몰랐던 조선 사람들의 삶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조선 여성의 능동적 삶과 애환에 대한 새로운 모습을 담아내다
지조와 절개의 나라이자 예의와 예절의 나라 조선, 이를 뒤집어 보면 많은 여성의 삶의 애환과 슬픔이 억눌려 있기도 하다. 사회가 부과하는 많은 억압, 그리고 지조와 절개라는 명분으로 조선 여성의 능동적인 삶이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가 부과하는 삶에 따라 여성들은 그저 고분고분하고 수동적인 삶을 살았으리라 생각하게 되지만 본 책이 소개하는 주인공 ‘유씨 부인’은 수동적으로 주어진 상황 속에서 자신만의 능동성을 발견하는 적극적인 여성상이라고 할 만하다.
유씨 부인이 자신의 삶의 환경을 타파하고 개혁을 통해 신분적인 한계를 돌파하는 등의 일을 벌인 것은 아니다. 다만 그동안의 많은 자료가 남성의 활동을 중심하여 서술될 뿐 아니라 결과론적으로 ‘가정을 일으켰다’는 등의 서사가 등장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여성의 활동을 중심으로 하되 보다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과정을 그린다는 점에서의 능동성이다. 과거시험에 매진하는 남편을 대신하여 가정의 종부로서 살림을 일으킬 뿐 아니라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노비를 부리고, 친인척을 포함한 다종다양한 대외 관계들을 유지하고, 재난과 흉년을 대비하며, 농업과 생산을 관리하는 등 현대로 말하자면 매우 뛰어난 CEO로서의 면모를 과감하게 보인다. 흔히 소극적이기만 할 것으로 예상하는 조선의 여성상을 뒤집어 보다 입체적으로 조선의 양반 여성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저자의 직접적인 연구와 분석을 토대로 이루어져 생활사 총서가 의도하는 대로 조선 양반 여성의 삶의 구체적인 면면을 살필 수 있음은 물론, 크고 작은 에피소드부터 삶의 애환까지 들여다 볼 수 있는 재미의 요소, 그리고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점까지 놓치지 않는다.
p. 30
또한 일기에 나타난 이 집안의 지출 규모는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선 빈번하게 행해지는 봉제사, 접빈객, 선물 송출, 서울로의 여행 경비와 서울집 생활비 외에도, 1회에 30-40냥 가량 소요된다는 과거시험, 부조금, 첩과 서얼의 존재 등 남성이 단독으로 지출하는 규모도 큰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유씨 부인은 남편이 주는 생활비 외에 많은 돈이 수시로 필요했고,이를 위해 안방마님은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p. 47
다음으로 유씨 부인은 대규모 노동력이 집중 투하되는 농사철ㆍ양잠철과 땔감 준비, 지붕 고치기 등의 업무에는 외부에서 단기 노동력을 대량 구매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농사철, 특히 모내기에 동원되는 인부들은 마을공동체의 두레패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외 양잠이나 땔감 준비 등에 동원되는 노동력은 필요에 따라 구매하고 있다.

p. 66
의복 생산은 조선시대 양반 여성들이 광범하게 종사했던 분야이다. 19세기 행장과 비문에는 이러한 사례가 종종 등장한다. “바느질에 힘써서 살림에 보탬이 되었다. 10년이 되지 않아 저택은 높고 크며, 토지(莊田)는 풍족하고 살림살이는 화려하고 아름다워졌다”라는 사료에서 보듯 바느질, 즉 의복 생산을 통해 살림을 일구었다. 또한 “바느질과 길쌈을 하여 다른 물건으로 바꾸어다가 시어머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것과 편안히 여기시는 것을 장만하셨다”라는 글을 통해 생산한 의복은 다른 상품과의 교환, 즉 판매를 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p. 76-78
여기서 주목을 끄는 인물은 여성인 춘옥과 판금이다. 판금은 부인의 비로 추정되며, 춘옥이는 인근에 거주하고 있는 여성으로 보인다. 남녀가 유별한 조선 사회에서 남성은 아무리 상인이라도 양반가의 안채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실제 소비생활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높기 마련이며, 고가의 옷이나 직물, 종이, 장신구류 등이 상당량 유통되었던 역사적 사실을 감안해 볼 때, 안채와 외부 세상을 연결시켜 주던 여성 보상(褓商, 보따리 장사)들의 활동을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바로 판금이와 춘옥이가 인근 사족 여성들의 안채에 드나들면서 유씨 부인을 대신하여 판매 행위를 담당했던 것이다. 이상으로 총 6명의 중개인들이 부인을 대신하여 거래했던 듯하며, 이들에게는 일정의 구전이 주어지고 있다.

p. 129-130
조선 양반가 여성들은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삶을 영위했을까? 그동안 유교적 사회윤리와 규범이 전 사회에 확산되었던 18·19세기의 양반 여성들은 일상생활에서 엄격한 통제와 규제를 받고 살았고, 따라서 이들의 사회적 관계 또한 매우 협소했을 것으로 짐작했다. 이런 추측들은 남성들이 남긴 자료에 의한 연구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유씨 부인의 일기에는 여
성을 수동적인 존재로만 규정할 수 없는 여러 모습이 등장한다. 비록, 양반 여성들의 문밖 출입 빈도수는 남성보다 낮더라도, 이들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자신들의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바깥세상과 소통하고 있었다. 그들의 사회적 네트워크는 자식들의 혼사 및 남편의 관직 진출, 정보 획득, 가정의 유지 및 운영나아가 유사시 가족에게 닥쳐올 위기를 관리하는 데 긴요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