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 도서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동양편 785] 삼국유사고증 역주 5권
저 자 무라카미 요시오 저 / 김정빈 역주
발행일 2024-01-22
판 형 신국판(152*225) 양장
ISBN 9791166841927
페이지수 260
정 가 23,000




『삼국유사』는 고려 후기의 승려 일연(一然, 1206-1289)이 고대 한국의 고구려, 백제, 가야, 신라의 정치·경제·군사적 관계를 역사적으로 모아 기록한 책이다. 나아가 사회·문화·종교·예술·건축의 전반에 걸쳐, 가능한 동아시아 모든 문헌에 의해, 고증의 태도로 편찬한 것이다.
본서는 규장각본(1512)을 비롯한 『삼국유사』 이본(異本), 한국사 DB와, 일본의 ‘삼국유사연구회’의 회원에 의해 저술된, 이미 이 분야의 저명한 책인 『삼국유사고증』과의 비교·대조를 행하면서 이루어진 것이다.
五권목차
(삼국유사고증 하2)

삼국유사 권제4

의해 제5(義解 第五)

의해 제5義解第五 _15
원광서학圎光西學 _15
보양이목寳攘梨木 _50
양지사석良志使錫 _68
귀축제사歸竺諸師 _75
이혜동진二惠同塵 _83
자장정률慈藏定律 _96
원효불기元曉不覊 _131
의상전교義湘傳敎 _154
사복불언虵福不言 _179
진표전간眞表傳簡 _185
관동풍악발연수석기關東楓岳鉢淵藪石記記 _207
승전촉루勝詮髑髏 _224
심지계조心地繼祖 _232
현유가해화엄賢瑜珈海華嚴 _242

후기 _252
_저자

저자 무라카미 요시오 村上四男_ 와카야마대학 명예교수, 삼국유사연구회 회장.


_역주자

김정빈(金正彬)_
히로시마대학대학원 학술박사(교육학), 일본국립시마네대학 연구원. 저서로는 『校正宋本廣韻에 의한 廣韻索引과 韻鏡索引』(한국학술원, 2010) 외 10여 편이 있으며, 역서로는 沼本克明의 『한국인을 위한 일본한자음의 역사』(한국학술원, 2008), 小林芳規의 『각필의 문화사』(한국문화사, 2016) 등이 있다.
‘우리는 과연 『삼국유사』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삼국유사』는 고대 한국의 파랑(波浪)을 지나, 북국(北國) 고려로의 통합과 재탄생을 그린 것이다. 우리는 모두 고(구)려인이 되었고, 광활한 대륙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큰 그림을 남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연은 우리에게 과제를 남긴 것이다.
원광은 성품이 허정함을 좋아하고 말할 때 항상 미소를 머금었고 얼굴은 노한 빛이 없었다. 연랍이 이미 많이 들어 궁에 수레를 타고 들어갔는데, 당시 여러 선비들 중 덕의가 속하는 바도 감히 그의 위로 나가지 못하였다. 문장의 넉넉함은 한 나라가 쏠리는 바였다. 나이 80여 세로 정관(貞觀) 연간에 죽었다. 부도는 삼기산 금곡사에 있다. 당전에 황륭사에 입적하였다고 하는데 그 지명이 분명하지 않고 황룡(皇龍)의 오자로 의심된다. 분황(芬皇)이 왕분사(王芬寺)로 쓰인 예와 같다.
위의 당전·향전 두개의 문장에 의거하면 다만 성씨가 박·설이며 출가가 동·서라서 두 사람 같아 감히 자세히 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둘 다 싣는 것이다. 그러나 그 여러 전기에는 모두 작갑·이목과 운문(雲門)의 사실은 없다. 그러나 향인 김척명이 잘못으로 떠도는 이야기를 가지고 원광법사전을 윤문하여 짓고, 함부로 운문개산조인 보양법사의 사적을 합해 기록하여 하나의 전으로 만들었다. 후에 해동승전을 편찬한 자는 잘못된 것을 계승하여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그때의 사람들이 많이 미혹되었다. 인하여 여기에서 분명히 나누고, 한 글자라도 가감하지 않고 두 전기의 문장을 자세히 싣는다. _30면

원효(617-686)는 의상과 나란히 일컬어지는 신라의 고승으로, 속세 이름은 설씨(薛氏). 진평왕 39년(617)에, 현재의 대구특별시에 가까운 경상북도 경산군 경산읍, 당시의 압량군 내의 불지촌(佛地村)에서 태어났다. 그 후 그가 출가한 것은 15세경이다. 그의 청년기 신라에서는, 불교는 눈부신 세력으로 일어나, 18세 때에는 분황사가 준공되고, 약 15년 후에는 황룡사구층탑이 완성되었다. 중국 당에서는 오랫동안 인도에서 불교의 심오한 뜻을 구한 현장이, 645년에 귀국하자, 태종의 두터운 신임 아래, 상좌(上座)가 되어 역경 사업에 종사하여, 중국불교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었다. 곧바로 해동에도 이것이 들려왔다고 생각된다. 그는 의상과 함께 650년에 당나라로 배움을 구하려고 출국했는데, 도중에 난(難)을 만나 귀국했다. “송고승전”(제4) 의상전(傳)에는 이러한 경위에 대해 상세하게 전하고 있는데, 원효는 만법유일의 도리를 깨달았기 때문에, 귀국 후에는 국내에 머물면서 일체의 경론을 연구하여, 위대한 불교학자가 되었다. 게다가 그의 독창적 사상은 중국불교에도 다대한 영향을 끼쳤다. _137면

지엄의 전날 밤 꿈에 큰 나무 하나가 해동(조선)에서 나서 (그) 가지와 잎이 널리 퍼져 중국(神州)에까지 와서 덮고, (그) 위에는 봉황의 둥지가 있는데, 올라가서 보니 마니보주가 하나 있어 광명이 멀리까지 비쳤다. (꿈을) 깨고는 놀랍고 이상히 여겨 깨끗이 청소를 하고 기다렸더니 의상이 바로 왔다. 특별한 예의로 맞아 조용히 말하기를, “나의 어제 꿈은 그대가 나에게 올 징조였다.”고 하고 제자가 됨(入室)을 허락하니, (의상은) “잡화경”의 미묘한 뜻을 구석구석 분석하였다. 지엄은 영특한 자질을 가진 인물을 만난 것을 기뻐하며, 새로운 이론을 발전시켜, 경의 깊은 뜻을 탐구하고, 감추어져 보이지 않는 진리를 구했는데, 이것은 남(藍)(남색)과 천(茜)(빨강)이 본래 색보다도 더 진해지는 것 같았다. _158면
“사리불문경”에 부처가 장자(長者)의 아들 반야다라에게 일러 말하였다. “너는 일곱 낮 일곱 밤 너의 앞선 죄를 참회하여 모두 깨끗하게 하여라.” 반야다라가 가르침을 받들어 낮밤으로 정성을 다하니 5일 밤에 이르러 그 방 안에서 비가 내리는 것처럼 여러 물건이 내렸는데 수건, 복두, 불추, 칼·송곳·도끼 등과 같은 것이 그 눈앞에 떨어졌다. 반야다라는 기뻐서 부처에게 물으니, 부처가 말하였다. “이는 진(塵)을 벗어나는 상이다. 쪼개고 털어 내는 물건들이다.” 이에 의거하면 곧 “점찰경”의 윤(輪)을 던져 상(相)을 얻는 일과 어찌 다르겠는가. 이에 진표의 참회를 일으켜 간자를 얻고 법을 물어 부처를 본 것이 무망이 아니라 말할 수 있다. 하물며 이 경전이 거짓이라면 곧 미륵은 어찌 몸소 진표법사에게 주었겠는가. 또한 이 경전이 가히 금할 것이라면, “사리불문경”도 금할 것인가. 언종의 무리는 금을 움켜잡느라, 사람을 보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_192면